정부·여당과 의료계의 극적인 협상 타결로 4일 집단휴진 사태가 일단락됐지만, 여권은 적잖은 내상을 입었다. 코로나19로 공공의료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과 176석 의석수를 믿고 공공의료 개혁을 밀어붙였으나 의료계의 완강한 저항에 가로막혀 사실상 ‘백기투항’한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여권은 일단 이날 합의로 당장 환자들이 고통 겪는 상황을 종료하게 된 데 의미를 부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 합의에 따라 의사들이 진료현장에 복귀하게 돼 의료공백 없이 환자 생명과 건강을 지킬 수 있게 됐고 국민 불안을 크게 덜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최고위원회의에서 “코로나가 재확산되는 엄중한 시기에 의료 문제까지 겹쳐 국민들이 큰 걱정을 하고 불편을 겪으셨다. 대단히 안타깝고 송구하다”며 “민주당은 의협과의 합의를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향후 공공의료 개혁의 동력이 매우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원점 재검토’와 ‘일방적 추진 없음’이 합의안에 명시된 만큼 협의체 논의과정에서 의사단체들의 이해관계가 반영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기존안보다 후퇴한 입법안이 도출될 경우 보건의료노조 등 기존 지지층의 반발도 부담이다.
당내에서도 공개적인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간호사 출신인 이수진(비례) 의원은 “이번 합의안은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 의대 신설, 지역의사제 도입을 의사들의 진료 복귀와 맞바꾼 것일 뿐”이라며 “힘을 가진 자들이 국민의 생명을 인질 삼아 불법 집단행동을 할 때 과연 정치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느 ‘원점’에 서 있어야 하냐”고 비판했다. 최근 부동산 정책 실패와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경기 침체에 이어 의료개혁에도 급제동이 걸리면서 집권 4년차 국정 운영 동력이 떨어질까 염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일각에서는 ‘정무적 판단미스’에 대한 책임론도 거론된다. 정부·여당은 지난 7월 23일 당정 결과 발표를 신호탄으로 공공의료 입법을 일사불란하게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후 전공의와 전임의들의 집단사직 사태가 벌어졌지만 초유의 업무개시명령까지 내리면서 강공 드라이브를 이어갔다. 그러나 대정부투쟁을 방불케 하는 의료계의 반발, 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의 강대강 대치는 결국 여권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의료계 반발을 예상했던 만큼 의료계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정책적 조율을 거쳐 추진해야 했으나 오히려 의료계 반대에 힘을 실어준 형국이 됐다는 지적이다. 특히 대한전공의협의회를 중심으로 젊은 의사들의 반발이 길어지면 향후 정부·여당의 운신 폭이 더 좁아질 수도 있다.
임기를 막 시작한 이 대표로서도 코로나19 위기 확산 국면에서 최악의 진료 공백 사태를 막았다는 성과를 내긴 했지만, 지지층의 비판여론 수습뿐 아니라 향후 ‘입법 전쟁’에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야당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 의대 설립 등 여당의 공공의료 강화 법안을 송곳 심사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코로나19라는 중차대한 시기에 의료진을 자극한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정책추진, 되레 정부가 사회적 갈등을 부추긴 데 대해 같은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복기하고 개선돼야 한다”며 “정기국회 과정에서 의료계 파업의 원인이 된 의대 증원 등 4대 정책을 면밀히 검토하고 철저히 검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상진 이현우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