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불황은 서민들의 일?… 백화점 강타하는 ‘명품 줍줍’

입력 2020-09-04 00:17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불러온 소비심리 위축 현상도 명품은 비껴갔다. 백화점 명품 매출액이 지난 3월 단 한번 감소세를 기록한 뒤 4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간 것으로 집계됐다. 백화점에서 파는 의류나 잡화, 식품 매출액이 급락세를 보인 것과 대조적이다. 그동안 금지해 왔던 면세점 재고품의 국내 소매점 반입을 허용한 점이 큰 영향을 미치기는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매월 20~30%대가 넘는 매출액 상승세를 충분히 설명하기 힘들다. 코로나19 이후 한층 벌어진 양극화 현상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3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최근 4개월간 3대 백화점(롯데·신세계·현대) 판매 상품 중 전년 동월보다 매출액이 증가한 상품군은 딱 두 개다. ‘가정용품’과 명품으로 통칭하는 ‘해외 유명 브랜드’가 주인공이다. 특히 명품 매출액의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부침이 있는 가정용품과 달리 명품 매출액 증가율은 지난 3월 저점을 찍은 이후 매월 증가율을 늘리고 있다. 특히 지난 7월에는 전년 동월보다 32.5%나 급증했다. 같은 달 여성 캐주얼(-27.2%)이나 남성 의류(-12.4%), 아동·스포츠용품(-18.3%)이 기록한 매출액 감소세와 대조적인 현상이다. 덕분에 7월 백화점 매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2.1% 감소하는 데 그쳤다.

불황 속에서도 명품의 인기가 높아진 이유는 뭘까. 업계에서는 면세점에 쌓여 있던 명품 재고가 시중 백화점에 유입된 점을 첫손에 꼽는다. 그동안 관세청은 ‘보세판매장 운영에 관한 고시’를 통해 면세품목은 원칙적으로 면세점 외 국내 매장에서 판매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쌓인 재고는 폐기 처분하거나 반송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이 규정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허물어졌다.

국가 간 이동 제한으로 공항 면세점 이용객이 급감하면서 면세점에 큰 타격을 입힌 점을 참조했다. 관세청은 반송을 용납하지 않는 명품 회사의 특성 때문에 울상이던 면세점 업계를 위해 당분간 예외를 두기로 했다. 4월 29일 고시를 통해 6개월 이상 안 팔린 물품에 한해 국내 반입을 허용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국내로 반입된 명품이 늘면서 백화점에서도 세일 등을 통해 판매량을 늘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조치만으로 명품 소비가 활발해졌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아무리 품목이 많고 세일을 해도 살 사람이 있어야 제품이 팔린다. 명품 소비층의 소득이 불황 와중에도 더 늘어난 거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2분기 가계소득동향 조사에 따르면 소득 상위 20%의 월평균 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2.6% 증가했다. 근로소득 자체는 줄었지만 재난지원금 덕분에 총소득이 늘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위원은 “재난지원금이 생활비를 일부 뒷받침한 만큼 고소득층이 명품을 소비할 여력이 생긴 게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