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현대산업개발이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의 최종 담판 이후에도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재실사가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면서 항공업계 ‘빅딜’은 결국 결렬 수순을 밟게 됐다. 채권단은 계약 해제 통보 시점을 조율하고 아시아나항공 경영 정상화를 위한 플랜B를 가동하는 등 계약 해제 작업을 본격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3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HDC현산은 전날 산업은행에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선 12주의 재실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이는 채권단이 HDC현산에 ‘늦어도 2일까지는 아시아나항공 인수 관련 입장을 달라’며 답변 기한을 지난달 28일에서 한 차례 연장한 데 대한 답이다.
앞서 이 회장은 지난달 26일 정몽규 HDC그룹 회장을 만나 아시아나항공 인수 조건을 명확히 알려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HDC현산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인수·합병 계약 이행을 거듭 미루면서 아시아나항공에 재실사를 요구하자 ‘얼마를 깎아주면 사갈거냐’며 인수 의지를 직접 물은 것이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HDC현산이 인수 의지만 확실히 하면 채권단이 함께 투자에 참여하고 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한 영구채를 자본으로 유지하는 등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과 금호산업은 전날 HDC현산이 재실사 요구를 반복한 게 사실상 인수 의지가 없다고 통보한 것과 다름없다고 보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인수 조건과 매수 의사만 확실히 밝히면 재실사 기간은 얼마든지 주겠다고 했는데 HDC현산은 모호한 답변을 반복했다”며 “겉으로는 ‘인수 조건을 재협의하자’고 하지만 속내는 매수 생각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금호산업이 조만간 HDC현산에 계약 해제를 통보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렇게 되면 아시아나항공은 본격적으로 채권단 관리 체제에 들어가 약 2조원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지원받을 것으로 보인다. 에어서울, 에어부산 등 계열사를 분리 매각하고자 제3의 인수자를 찾는 방안도 거론된다.
향후 채권단과 HDC현산 간 계약 무산 책임을 두고 치열한 법정 공방이 벌어질 전망이다. HDC현산은 이미 지급한 계약금 2500억원 중 일부라도 돌려받기 위해 ‘재실사를 못해 인수를 완료하지 못했다’는 논리를 펼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포기한 한화가 2018년 대법원에서 ‘노조 방해로 재실사를 하지 못해 인수하기 어려웠다’는 이유를 인정받고 계약금 일부를 돌려받은 예가 있다”고 말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