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사’의 의미

입력 2020-09-04 04:08

며칠 전 저녁 식사 자리, 뒷자리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렸다. 30대 직장 동료들로 보였다. 대화는 의사로 시작해 목사 판사 검사로 이어졌다. 의료계 파업, 코로나 확산, 서울 광화문 집회 때문이었다. 약간의 설전도 벌어졌지만 “‘사’자들이 문제야. 다들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로 마무리되며 이내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잘나가는 사람’ 중 사자 붙은 직업이 많다. 모두 선비 사(士)를 쓴다고 아는 사람도 꽤 된다. 하지만 맡은 역할에 따라 다른 한자를 쓴다. 판사(判事) 검사(檢事)는 일 사를 쓴다. 변호사(辯護士) 노무사(勞務士) 법무사(法務士) 변리사(辨理士) 세무사(稅務士) 기사(技士) 등은 선비 사를 쓰고, 의사(醫師) 목사(牧師) 약사(藥師)는 스승 사를 붙인다.

차이점을 찾으셨는지. 事는 어떤 일을 맡은 사람에게 붙인다. 事에는 섬긴다는 뜻도 있다. 위임받아 일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직무를 수행하기 전 선서라는 행위를 한다. 문구는 다르지만 선서 내용에는 국민을 섬긴다거나 국민으로부터 받은 권한이라는 표현이 들어간다. 판사와 검사 윤리강령에도 각각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권을 법과 양심에 따라 엄정하게 행사’ ‘직무상의 권한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것임을 명심하여’라고 적시하고 있다.

士는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이나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다. 공인기관의 시험을 거쳐야 한다. 대체로 어렵다. 변호사는 법을 다루지만 공적인 직무라기보다 개인을 돕는 일을 하기에 직책보다 사람에 초점을 맞춰 선비 사를 쓴다. 변호사도 법으로 사명과 직무를 명시하고 있다. 기본적 인권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이다. 師는 가르치는 일을 하거나 높은 윤리의식 도덕성 등을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사용한다. 의사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간호사는 나이팅게일 선서, 약사는 디오스코리데스 선서를 하면서 직무의 중요성을 스스로 되새기고 세상에 나온다. 세 가지 선서는 생명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인류를 위해 삶을 바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몸을 쓰면서 수고하는 사람들에게도 붙인다. 마술사(魔術師) 요리사(料理師) 정원사(庭園師) 등이다. 의사 간호사 약사도 발로 뛰며 손을 쓴다.

그리스도교의 사제·목사는 안수를 받는다. 교회의 직무와 권한을 받아 교회와 성도를 위해 살겠다는 의식을 거친다. 가톨릭과 성공회는 사제서품식 중 안수에 더해 머리를 들지 않고 바닥에 엎드리는 순서를 갖는다. 가장 비천한 자로 무능력하며 세상에 대해 죽고 오로지 하나님께 의지하고 겸손히 교회와 성도에게 봉사하겠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언제나 깨어 있으시오. 나는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 나의 이 두 손으로 일해서 장만하였습니다. 나는 여러분도 이렇게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고 하신 주 예수의 말씀을 명심하도록 언제나 본을 보여 왔습니다’(사도행전 20:33∼35)라는 구절을 낭송하기도 한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떠나며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교회를 부탁하는 설교 중 마지막 대목이다.

공통점을 찾으셨는지. ‘잘나가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다. 존경받아야 한다. 보편의 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거나 시선을 다른 사람에게 맞추지 않고 이익집단처럼 행동하면 외면받고 심하게 질타받는다. SNS 친구가 최근 이런 글을 남겼다. “현실, 슬기로운 의사나 김사부 황시목은 없는 게냐.” 이번 주말엔 못 본 드라마를 ‘정주행’해야겠다.

전재우 사회2부 부장 jw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