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대박 꿈꾸며 증시 입문한 초보자들, 투자-도박 경계서 혼란… 길잡이는 어디에

입력 2020-09-06 18:00 수정 2020-09-06 18:27

인천 서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정모(29·여)씨는 최근 자신의 아버지가 불과 3개월 만에 8000만원 가까이 잃은 사실을 알게 됐다. 정씨의 아버지가 사용한 목돈은 가족이 함께 모으던 돈으로, 오는 2021년 초여름에 잡혀있는 정씨의 결혼 준비자금이었다.

정씨의 부친은 지난 상반기 중 주식을 처음 시작했다. 고등학교 동창이 주식으로 크게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투자 시작의 동기였다. 주식 계좌도 없었던 상태로, 주식과 투자에 대한 사전 지식은 전혀 없는 상태였다고 했다. 정씨의 부친은 모바일 트레이딩시스템(MTS)에서 주식 자금 입금과 출금, 매매 방법 등만 간신히 배운 상태에서 사설 리딩 업체까지 이용했다.

정씨는 “잘 모르는 사람이 섣불리 손을 대서 거액이 불과 몇 개월 사이 허망하게 날아갔다”며 “주식으로 날린 돈은 사기에 당한 것도 아니라 찾을 수도 없고. 아버지가 이용한 사설 리딩업체라는 곳이라도 문제가 없는지 경찰에 알아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 상반기, 코로나19로 인해 촉발된 증시 변동폭 속에 신규 투자자가 대거 유입됐다. 특히 코스피·코스닥이 연 최저점을 기록했던 지난 3월에는 주식거래 활동 계좌가 80만개 넘게 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증가폭을 보였다.

이처럼 대거 유입된 신규 투자자 중 정씨의 부친처럼 주식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수준에서 거액의 자금을 날리는 초보 투자자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포털의 주식정보 종목 게시판 등에는 소위 ‘지라시’를 보고 투자했다가 수천만원 대의 금액을 날렸다는 한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3억을 투자했다”면서도 해당 게시판에서 주식 투자 관련 기초 용어의 의미를 묻는 투자자도 흔하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 따르면 센터가 운영하는 상담 프로그램 ‘헬프라인’ 도박 상담 접수 통계 중 주식 문제 관련 상담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한 직후, 도박상담 유형 중에서 주식 비중이 기존 4.4%에서 9.8%대로 5.4%p 급증했다. 주식 관련 상담 인원은 기존 대비 91.3%(46명→88명) 늘었다. 특히 전체 연령별 분석 통계 중 40대 이상에서 주식 부분이 급증한 것으로 파악됐다.

주식관련 비중이 증가하면서 불법·합법 형태의 도박 비율은 각각 3.3%, 2.2%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스포츠경기와 경마가 줄줄이 중단되면서 마땅한 도박처를 찾지 못한 이들이 일부 주식시장에 유입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정보영 서울센터장은 코로나19이후 도박행위의 변화 양상을 다룬 심포지엄에서 “주식이 도박이 되지 않기 위해 올바른 투자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투자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 주식은 도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대로 모를수록 위험성도 높다. 주식은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접근성이 낮은 투자처이지만, 고위험 투자 종목에 속한다. 자칫하면 언제든 원금을 대거 날릴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또 초보 투자자들을 노리는 불법 업체들도 넘쳐난다. 불법 사설 리딩 업체에 얽혀 투자자가 거액을 날리는 경우도 흔하다. 이들은 주식을 잘 모르지만 큰돈을 벌고 싶어 하는 투자자들을 노려 ‘최소 100% 수익률 보장’ 등의 자극적인 허위·과장 광고를 앞세워 투자자들을 현혹한다. 금융감독원도 최근 이같은 문제가 심각해지자 “인가받지 않은 불업 업체가 급증해 소비자가 피해를 당할 위험이 높다”며 소비자 경보(주의)를 발령하기도 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어쩌면 불법 도박 투자자와 그쪽 음지 자금이 늘어나는 것 보다는 나을 수도 있다. 그들이 주식시장으로 흘러 들어와서 돈을 잃는 게 자본시장을 위해서는 차라리 건전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면서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건전한 투자문화 형성을 위해서는 투자교육이 뒷받침 돼야 한다. 국내 투자교육이 너무나 부실한 상태다. 이유도 모르고 돈을 잃는 투자자들이 양산되는 것을 방임해서야 되겠는가. 정부에서 주식시장을 활성화하려는 의지만큼 교육 강화 의지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영의 쿠키뉴스 기자 ysyu101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