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미래 위해 옛날로 돌아가기

입력 2020-09-04 04:02

“엄마! 신발은 밖에다 벗어놔야지!” 오늘도 아내의 목소리가 하이피치로 치닫는다. 치매를 앓고 계신 어머니는 집 안에 들어오면서 신발 벗는 것을 잊어버리신다. 조금 전에 진지를 드시고도 또다시 밥 달라고 닦달을 하고, 시도 때도 없이 냉장고를 열어서 아무거나 마구 꺼내 드신다. 계란이 보이면 가져다가 장롱 깊은 곳에 숨겨놓고 잊어버려서 썩은 냄새가 진동할 때도 있다. 아내는 냉장고 문을 자전거 체인으로 꽁꽁 잠가둔다.

얼마 전에는 퇴근길에 소방차 여러 대가 급하게 달려가는 것을 보았는데 집에 가니 모두 우리 집에 와 있었다. 어머니는 딸이 없는 사이에 전기밥솥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고 밥을 하셨다. 전기밥솥은 가스 불 위에서 형체 없이 녹아내려 연기가 온 집에 가득하더니 불이 붙기 시작했다. 다행히 2층에 손자가 있었다. 소방차가 도착한 때는 경보 소리를 듣고 뛰어내려와 소화기로 불을 끈 상태였다. 우리 부부는 어머니 병환이 안타깝긴 해도 이렇게 모시고 살 수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 우리 가족이 친가와 처가 양쪽 부모님을 독차지할 수 있는 것이 형제자매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세 분이 가시고 이제 한 분 남으셨다. 그 한 분이 떠나시면 그 후에는 내 차례가 될 것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고령화사회를 걱정하고 있다. 아이들은 적게 태어나는데 수명은 늘어나서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부양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 인구추계 보고서에 의하면 생산인구 대비 노인 인구를 나타내는 노인부양 비율은 2020년 21.7%, 2030년 38.2%, 2040년 60.1%, 2050년 77.6%로 급속하게 증가한다. 이런 흐름이 계속된다면 2025년에는 생산가능인구(15~64세) 3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고, 2032년부터는 2명이 1명을 부양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고령화사회를 걱정하지 않는다. 성경을 통해 볼 때 노인이 많아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나라에 내려주시는 복이요 은혜다. 아이들이 적어지는 것은 슬픈 사실이지만 노인이 많아지는 것은 기뻐할 일이다. 우리나라가 동란 후 70년 동안 전쟁이나 기근 없이 평안하고 풍요로워져서 장수하는 사회가 된 것은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이제 4차산업이 발달하면 생활은 더 편안해지고 물자는 더 많아져서 한 사람이 일해도 열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일하고 나머지는 문화적 여유를 즐기며 살아도 될 것이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노인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이다. 자신들도 늙어 갈 것이 분명한데 세대 간 갈등이 심화되고 서로를 향한 혐오적 표현들이 난무하고 있다. 노인을 시설이나 기관으로 격리시키고 ‘부양’이니 ‘원조’니 ‘관리’니 하는 개념으로 접근한다. 노인을 이해한다고 하면서 말하는 ‘노쇠’ ‘고독’ ‘소외’ ‘단절’ ‘빈곤’과 같은 용어들은 노년을 불쌍한 세대로 낙인찍어서 절망과 허무로 이끌어갈 뿐이다. 성경은 ‘공경’과 ‘부러움’, ‘축하’와 ‘존경’으로 노인에게 다가선다. 노년을 설명할 때 영화(잠 16:31), 새로움(고후 4:16), 아름다움(잠 20:29), 지혜(욥 12:12), 면류관(딤후 4:8), 꿈(욜 2:28), 결실(시 92:14) 등과 같은 단어들을 동원하고 있다. 이 얼마나 밝고 희망적인가!

우리 가족은 4대가 한 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다. 요즘 같은 핵가족 시대에 유별나게 누리는 행복이요 자랑이다. 헬레나 호지는 ‘오래된 미래’라는 이상한 제목의 책을 통해 우리의 미래가 오래된 과거를 회복하고 유지하는 데에 있음을 설명했다. 우리의 미래가 희망을 가지려면 성경이 가르쳐 왔던 가족에 대한 관점, 오랫동안 우리 민족이 갖고 있었던 미풍양속을 회복해야만 할 것이다.

유장춘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