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를 막론하고 요리 잘하는 사람이 부럽고 존경스럽다. 창피하게도 이 나이 먹도록 요리는 나에게 여전히 어렵고 힘든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한 지인이 쉽게 만들 수 있다며 식빵 레시피를 알려줬다. 사람들이 요즘 별의별 창의적인 것을 만들고 요리하며 ‘집콕’을 견딘다고 들었어도 내가 해볼 생각은 추호도 없었건만, 왠지 그날따라 쉽다는데 한번 해볼까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부터 잘못된 시작이었다. 쉽고 간단하다는 말은 평소 요리를 좀 하던 사람에게나 맞는 말이었다.
시작하자마자 부엌은 엉망진창, 오븐에 넣기도 전에 반죽부터 망한 게 자명했다. 속상하고 버리기 아까워 고민하다 어쨌든 밀가루, 우유, 버터가 들어갔으니 뭐든 되겠지 싶어 와플 기계에 반죽째 넣고 구웠다. 다행히 좀 뻑뻑해도 과일과 잼을 곁들이니 먹을 수 있는 수준은 됐고, 살다 살다 망친 ‘식빵 맛 와플’을 다 먹어본다며 가족끼리 깔깔 웃는 식사시간을 덤으로 누렸다.
추천받은 식당을 못 찾고 길을 헤맸던 적이 있다. 낯선 곳에서 피곤하고 배도 고파 부아가 치밀던 차에 길을 잃지 않았다면 가보지 못했을 법한 위치의 저렴한 맛집을 찾았다. 식사 후 식당 옆 동네 서점 진열대에 평소 좋아하던 작가들의 책이 보여 한아름 사서 나올 때는 숨겨진 보물이라도 찾은 양 신이 났다. 여행책자에 나올 근사한 식당이나 거창한 장소는 아니었지만 고마운 실수 덕에 추억이 곱게 덧입혀진 선물을 받은 셈이다. 지금도 그 책을 펴면 난처함에 어쩔 줄 몰랐던 당시의 어수룩한 내 모습과 이후에 연달아 일어난 반가운 경험이 마치 조금 전 일처럼 떠올라 나도 모르게 빙긋 웃게 된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살아가며 실수도 하고 그 덕에 삶이 풍요로워지기도 한다. 나나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작은 실수 정도는 웃어넘길 수 있는 마음속 여유의 틈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말이다.
배승민 의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