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는 가운데 한국교회의 이미지가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몇몇 교회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데다 일부 목회자와 교인이 코로나19 방역에 협조하지 않은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치세력화한 일부 극단적 목회자와 교인들도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언사로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다.
반면 전염병 시대를 산 초대 그리스도인 이미지는 지금과 정반대였다. 로마 전통 종교를 숭앙했던 황제 율리아누스는 그리스도교를 ‘하나님 아닌 인간(예수)을 예배하는 갈릴리인 종교’라고 깎아내렸지만, 그리스도인의 대사회 섬김에 관해선 인정했다. “유대인은 아무도 구걸할 필요가 없고, 불경한 갈릴리인은 자기네 사람뿐 아니라 우리 중에 있는 가난한 사람도 돕는다. 우리 백성은 우리에게서 도움을 받지 못하는 형편이니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른다.”
기독교 역사학자이자 영성 작가인 저자가 극소수 초대 그리스도인이 로마 제국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추적한 책을 펴냈다. 책은 초대 그리스도교의 정체성과 공동체적 특질, 예배나 입교 방식 등에 관해 고대 여러 문헌을 들며 두루 논한다. 코로나19 시대인만큼 이 중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세상 속의 삶’이다. 여기서는 초대 그리스도인이 전염병에 대처하는 법과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방식을 다룬다.
주후 250년 로마 제국에 인구의 5분의 1이 숨진 전염병이 유행할 때도 그리스도인은 남다른 모습을 보였다. 로마인이 감염을 우려해 거리에 버린 환자를 간호했고 죽은 자를 매장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다른 로마인 집단보다 전염병에 자주 노출됐음에도 생존율이 높았다. 아픈 이를 서로 돌보는 문화가 공동체를 살린 측면도 있고, 간호하다가 면역력을 얻는 예도 있었다.
미국 역사학자 윌리엄 맥닐은 저서 ‘전염병의 세계사’에서 전염병에 맞선 그리스도교의 특징을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예측하지 못한 죽음 한가운데서도 삶을 의미 있게 만들었다.… 따라서 기독교는 고난과 질병, 폭력적인 죽음이 흔한 곤경의 시기에 알맞은 사고·정서 체제였다.”
서양 최초의 극빈자 구제 기관을 만든 것도 초대 그리스도인이다. 카이사레아 주교 바실리우스는 이민자를 환대하고 한센인을 치료하며 실직자에게 기술 훈련을 제공하는 구빈원 ‘바실리아드’를 세웠다. 당시 로마에는 엘리트를 위한 의료시설이 있을 뿐, 바실리아드처럼 극빈자를 섬기는 기관은 없었다.
초대교회 규모는 주후 40년에 5000여명, 주후 300년에 5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예배는 가정교회 형태로 이뤄졌는데, 주후 300년쯤엔 가정교회가 6만5000곳에 이르렀다. 250여년간 로마제국의 탄압을 받는 가운데 사회적 약자를 돌볼 뿐 아니라 예배자 수도 늘린 셈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저자는 이 ‘초기 기독교 운동’의 성공 요인을 ‘예수’로 본다. 초대 그리스도인은 겉으로 보기엔 여타 시민과 전혀 차별점이 없었다. 다만 철저히 예수의 말씀대로 살았다. 예수가 죄인을 성도로 부르고 가난한 자를 사랑한 만큼, 그분의 제자인 그리스도인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들은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예수의 본을 따르기 위해 간음과 마술, 영아 유기를 멀리하고 궁핍한 자를 위해 재산을 내놓았다. “이 땅에 속하지 않지만, 확실히 이 세상을 위하는 길”을 택했다. 저자는 이 길을 ‘제3의 길’이라고 불렀다. 제국의 질서에 순응해 황제를 신으로 모신 것도, 유대교처럼 자기 민족의 문화에서 고립된 것도 아닌 새로운 삶의 방식, 곧 ‘하나님 나라’를 드러냈다는 의미다.
저자는 지금대로면 서구 교회가 점점 쇠락할 것으로 본다. 기독교 황금기에 누린 권력과 특권은 옛말이다. 미래의 그리스도인은 사회에 순응하거나 사회와 고립되는 길을 택할 것으로 예측한다. 암울한 전망이지만, 대안은 있다.
“초대 그리스도인은 제자의 삶을 인정하거나 보상해 주지 않는 문화에서 제자로 사는 것이 지금도 가능하다고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 운동은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한국 그리스도인 역시 새겨들을 말이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