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우리나라 홍수관리 대책의 문제점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불분명한 피해 원인을 놓고 하천·댐·시설물 운영관리부터 4대강 사업 영향까지 소환되며 격렬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환경부·국토부 등 부처별로 흩어져 있는 물관리체계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향후 100년을 내다볼 수 있는 통합물관리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핵심 과제와 해결책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최장 장마 기간에 제방이 붕괴되고 홍수피해를 키운 주된 요인은 ‘파이핑 현상’이라는 전문가 주장이 나왔다. 파이핑 현상이란 모래 지반이 다공질 상태가 되어 지반 내 파이프 모양의 물길이 뚫리는 현상을 말한다. 댐 운영관리 소홀을 탓하기 전에 하천 시설물 정비 미흡 등에 문제가 없었는지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한하천학회장인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2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2020년 장마 홍수피해 원인과 바람직한 치수 정책’ 토론회에서 “환경부가 댐 방류량 관리에 위법사항이 있다면 관련자를 엄정 조치한다는데 이미 공개된 댐 운영 자료를 살펴보면 심각한 위법사항이 보이지 않는다”며 “낙동강과 섬진강은 하천 제방으로 물이 넘어가는 월류보다는 모래 제방에서 발생한 파이핑 현상과 측방 침식 때문에 제방이 붕괴한 것”이라고 밝혔다.
제방은 배수관이 콘크리트로 돼 있는데 배수관과 제방 접합부에 물길이 형성되면서 모래가 쓸려나가고 결국 커다란 구멍이 생기면서 제방이 붕괴됐다는 것이다. 물그릇을 미리 비워두지 않고 있다가 빗물을 방류해 피해를 키웠다는 일각의 주장을 일축한 셈이다. 그는 “파이핑 현상이 제방 붕괴의 결정적 원인”이라며 “특히 4대강 사업으로 건설한 합천보의 하천수위 상승이 파이핑 현상을 가속하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장마는 6월 24일부터 54일간 이어지면서 역대 최장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 기간 동안 21번의 폭우를 쏟아내며 42명의 인명 피해와 약 800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재산피해도 컸다. 피해 지역 일부 주민들은 한국수자원공사가 물을 지나치게 많이 방류해 제방이 무너지는 등 수해 참사가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는 4대강 사업이 이번 홍수피해에 미친 영향을 두고 논쟁이 불붙었다. 결국 정부는 민·관 합동 ‘댐관리 조사위원회’를 꾸려 피해 원인 분석에 착수하기로 했다.
박 교수는 하천 제방을 관리하는 국토교통부도 홍수피해 책임이 무겁다고 했다. 2018년 환경부가 홍수통제 기능을 넘겨받았지만, 여전히 제방·홍수를 방어하는 배수펌프 등 시설물 관리는 국토부가 맡고 있다. 박 교수는 “홍수피해의 책임을 물의 양을 줄이지 못한 환경부와 수자원공사에 묻고 있는데 하천 제방을 관리하는 국토교통부는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어 “향후 홍수 대책에서 댐 운영 개선과 제방 보강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며 “정부조직법을 개정해 국토부 하천계획과를 환경부로 이관하는 것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동진 국토환경연구원 대표도 홍수피해가 기후변화나 댐 관리 운영 부재보다는 ‘정책’ 때문이라고 보는 게 합당하다고 역설했다. 최 대표는 “기후위기 시대에 치수 대책은 댐과 제방 중심에서 유역 전반을 아우르는 대책으로 전환됐다”며 “홍수보험제도 등 보장제도를 마련하고 홍수 총량제 등 새로운 치수 패러다임을 도입하는 동시에 주민이 참여하는 유역거버넌스를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구범 환경부 수자원정책과장은 “범정부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고 댐·하천 관리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듣고 있다”며 “연말까지 댐 관리 등에 대한 종합대책을 마련해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최재필 기자 jp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