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검찰수사심의위원회 결정을 거스르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기소하자 법조계에선 심의위의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사법처리의 공정성과 신뢰도를 높이겠다며 검찰 스스로 도입한 제도가 무용화됐다는 지적이다. 법조계에선 심의위 결정에 대해 구속력을 부여하고 전문성·투명성을 높이는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현재 심의위 결정은 권고적 효력밖에 없기 때문에 결론을 둘러싸고 법적 안정성을 해치거나 책임소재가 흐려지는 문제가 생긴다”며 “구속력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법원에서도 배심 재판의 과도기적 성격인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들 결정을 받아들이는 게 실무 관행으로 정착됐다”고 덧붙였다.
검찰 예규인 심의위 운영지침을 입법을 통해 명문화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법적 규범력을 높여 심의 대상 안건과 불복 사례, 절차 등을 정교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사법에서 국민의 민주적 통제를 받겠다는 심의위의 취지는 거스를 수 없는 검찰 개혁의 흐름”이라고 말했다.
심의위는 검찰 개혁의 목적으로 미국의 대배심제를 본떠 2018년 1월 도입됐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주요 사건들에 대해 수사·기소 전반에 걸쳐 법조계, 학계, 시민단체 등 외부 전문가들이 심의하도록 했다.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은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 공정성을 담보하는 방안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심의위는 지난 2년간 기아차 노동조합 파업 사건, 안태근 전 검사장 직권남용 사건 등을 살폈고 검찰은 8번의 결정을 모두 따랐다. 하지만 검찰이 이 부회장과 채널A 기자 강요미수 의혹 사건에 연루된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심의위 권고를 2차례 어기면서 제도 손질 필요성이 제기됐다.
법조계에선 심의 안건에 차등을 두고 심의위 절차의 투명성과 전문성을 재고하는 것을 개선 과제로 꼽는다. 삼성 부정승계 의혹 사건의 경우 양이 방대하고 법리적으로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애초 심의위에서 다룰 만한 사안이 아니라는 문제가 제기됐었다. 짧은 시간 논의를 통해 1년9개월간의 검찰 수사를 한 번에 뒤집는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심의위 참석자가 누군지,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 등을 공개해서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위원회에 사건이 회부되면 법조계, 학계, 시민단체 등 외부위원 250명 중 무작위로 선정된 15명의 위원이 다수결로 기소 및 수사계속 여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이들의 면면과 논의 내용은 규정상 비공개여서 매번 “베일에 싸여 있다”는 비판이 나왔었다. 심의위의 결정에 대한 이유를 수사팀이 모른다는 문제도 있다. 이 부회장 사건에서 검찰은 “심의위가 내린 결론만 통지가 되지 구체적인 내용과 논의사항은 알 수 없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었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