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여건 쏟아진 ‘언택트 법안’… 부작용 고민없는 ‘묻지마 발의’도

입력 2020-09-03 00:10

코로나19 재확산에 ‘언택트’ 시대로의 전환이 빨라지고 있다. 국회에서는 원격의회 도입, 비대면 진료 허용, 학교 원격수업 지원 등 언택트 시대에 대비한 법안 발의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현재까지 발의된 언택트 법안만 300여건이다. 여야는 이미 코로나19 관련 법안은 숙려기간 없이 우선 처리한다는 데 합의한 상태다. 그러나 일부 법안은 시행 시 양극화를 부추기는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2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법안 제안 이유 및 주요 내용’에 ‘코로나’를 포함한 법안 발의는 331건이다. 이날까지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 3363건 가운데 10%에 달하는 법안이 코로나와 직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만큼 정치권에서 코로나에 대응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는 방증이다.

국회에서는 원격의회 도입을 위한 입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 재확산에 국회가 ‘셧다운’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을 경우에도 입법 공백을 피하기 위해서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감염병 확산 및 천재지변 등 긴급상황 발생 시 국회의원의 원격회의 출석과 표결을 허용한다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는 비대면으로 안건을 처리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다.

조명희 국민의힘(옛 미래통합당) 의원도 국회 국정감사나 국정조사 때 출석을 요구받은 참고인이 질병 등의 사유로 국회에 직접 출석하기 어려운 경우 의장 또는 위원장의 허가를 받아 온라인으로 원격출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영국 하원은 원격의회 도입에 가장 앞서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영국 의회는 코로나 종식 때까지 한시적으로 오프라인 현장에 출석하는 방식과 원격참여를 모두 인정하는 병행의사 절차를 지난 3월 도입했다. 영국 하원은 지난 5월 윤리위원장 선출 등에 처음으로 원격표결을 활용하면서 언택트 시대에 발 맞춘 원격회의를 구현했다.

코로나 확산은 비대면 진료의 법적 근거 마련에도 불을 붙였다. 김성주 민주당 의원은 감염병에 따른 심각 단계 이상의 위기경보 발령 시엔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앞서 정부는 코로나 확산에 병원 방문이 어려운 점을 고려해 임시적으로 일부 질환에 한해 비대면 진료를 허용한 바 있다.

정춘숙 민주당 의원도 병상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 자가 등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경우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 개정안을 내놨다. 또 오영환 민주당 의원은 119 신고 접수부터 구급 출동까지 질병관리본부에서 보유한 코로나 등 감염병 환자에 대한 정보공유 체계를 구축토록 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로 일반화된 원격수업의 제도화를 위한 법안들도 마련됐다. 서동용 민주당 의원은 초·중·고교 원격수업의 법적 근거를 명시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도 원격수업 활성화 등을 위한 5년 단위의 교육 정보화 계획 수립·시행 규정을 포함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대학 원격수업 출석일수 인정 등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준비했다.

여야는 지난달 26일 코로나19 관련 법안에 대해선 숙려기간(최소 20일)을 두지 않고 우선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코로나 대응과 언택트 시대에 대비한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겠다는 포석이다.

민주당 정책위 관계자는 “방역 강화 법안 등 코로나19와 관련한 법안을 중심으로 신속 통과 법안 목록을 작성 중”이라며 “비대면 진료 한시 허용을 담은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 개정안, 원격수업 제도화를 위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등을 일단 대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로나와 관련해 발의된 법안이 많은데 충분히 당내 협의를 거쳐 야당과도 합의돼야 신속 처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여야가 발의한 언택트 법안들이 내용에 대한 세밀한 검토 없이 발의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원격의회가 도입되면 의회민주주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다수당의 독주가 원격의회로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재도 여야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데 원격의회가 본격화되면 일방향성만 커져 각자 하고 싶은 얘기만 하고 끝날 수 있다”며 “그럼 자연스럽게 표가 많은 다수당에 유리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일방적인 회의 개최와 표결이 이뤄질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대안부터 국회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비대면 진료 관련 입법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의료계도 비대면 진료 육성에 반대하고 있다. 의료법 전문가인 정혜승 변호사(법무법인 반우)는 “모든 환자에 대한 진단이 장비를 활용한 검사를 통해 이뤄져 대면하지 않고는 할 수 있는 의료 행위가 거의 없다”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라고 무작정 비대면 진료 확대를 추진하는 건 환자를 위해 좋지 않다고 본다”며 신중한 입법을 주장했다.

원격수업이 학력 격차를 심화시킨다는 시각도 있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원격수업은 개인별, 학교별 편차가 굉장히 커 코로나가 끝난 이후에 굳이 장려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일방향성이 큰 현재의 원격수업이 가진 결함을 어떻게 보완하느냐가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이 배운 내용을 익힐 수 있고 교사가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온라인 프로그램 마련에 입법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