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4대 의료정책 추진을 둘러싼 의·정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의사 국가고시가 정상적으로 시행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미 시험 응시 학생의 90% 이상이 원서 접수를 취소한 상태다. 만약 내년에 3000여명에 달하는 의사가 배출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공공보건 인력 확충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2일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에 따르면 의사 국가고시 응시 회원 3036명 가운데 2832명(93.3%)이 원서 접수를 취소했다. 의사 국가고시는 1차 실기와 2차 필기로 나뉜다. 둘 다 합격해야 의사면허증이 나온다. 오는 8일로 연기된 실기를 치르지 않으면 1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전공의를 중심으로 이뤄진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측은 의사 정원 확대 등 정부가 발표한 4대 의료정책에 반대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의·정 갈등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전공의 파업을 지지하는 의대생들이 시험장으로 돌아올 명분은 점점 줄어든다.
문제는 의대생들의 집단 시험 거부 사태를 학생 개개인의 유급 문제로 가볍게 넘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의사라는 직업 자체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특수한 직종인 데다 3000여명이나 되는 집단 유급 사태는 전례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선 매년 700명가량 충원이 필요한 공중보건의의 인력 공백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공보의는 740명이 뽑혔고, 2018년(올해 3년차)에 뽑힌 공보의는 약 500명이었다. 공보의는 지역 보건소나 오지에서의 근무로 군 복무를 대체한다. 현재 전국 선별진료소로 파견돼 진단검사 등 방역 업무를 수행하는 인력이기도 하다. 감염병이 재창궐하는 시기에 인력 공백이 현실화한다면 의료체계 붕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대공협) 관계자는 “올해도 정원에서 70명 정도가 미달됐었다”고 말했다. 올해 3년차인 인원만 해도 500명인데 한 사람당 업무 부담이 점점 가중되는 중이라는 것이다. 그는 “공백이 발생하면 한 사람이 2개 보건지소를 담당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군의관 수급도 문제다. 군의관은 대개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의사들로 구성된다. 의사 국가고시를 치르지 않으면 특정 해에 군의관 정원 확충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보통 인턴 생활 5년 후 입대하기 때문에 5년 이후부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의대에서도 유급 인원이 쏟아지면 강의실 확보, 교수진 업무량 조절 등 강의 대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실기과목이 많은 의대 수업은 인원수에 따라 학업 성취율이 크게 달라진다.
다만 전문가들은 의대생들의 시험 거부가 실제 집단 유급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공위원장은 “의사 국가고시 합격률이 60% 이하였던 1995년 7월에 정부는 전면 재시험을 실시했었다”며 “정부로서도 유급으로 인한 의료 공백이 현실화하도록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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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웅 정우진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