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생산도 하겠다는 한전… 신재생에너지 시장 뛰어드나

입력 2020-09-05 04:07
한국해상풍력은 지난해 7월 서남해 해상풍력 실증단지 건설 사업의 설치를 마치고 11월 가동에 들어갔다. 한국해상풍력은 한국전력공사가 25% 출자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으로 한전은 내·외부망, 해상변전소 설계 및 시공을 담당 중이다. 한국전력공사 제공

한국전력공사가 신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에 직접 참여할 세 번째 기회가 열렸다. 한전은 신재생에너지 시장의 성장과 한전의 재무 상태 개선이 동시에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민간발전사들은 공정한 경쟁이 어려워진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행 전기사업법에 따르면 동일인은 두 종류 이상의 전기사업을 할 수 없다. 김대중정부 당시 전력 발전과 전기 판매를 분리해 한전의 발전시장 진출을 막는 구조개편이 이뤄졌다. 이후 한전은 전력 송배전 및 판매를 담당하고 발전사업 부문은 한국수력원자력, 남동발전, 동서발전, 중부발전, 서부발전 등 한전의 발전 자회사로 분할됐다. 현재는 한전의 발전 자회사와 민간발전사가 전력을 생산해 한전에 판매하면 한전이 이를 다시 산업용, 상업용, 소비자용으로 나눠 되파는 방식이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전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은 한전도 신재생에너지 발전에 한해 직접 전력 생산에 참여할 수 있게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 발전시설을 한전의 자회사가 아닌 한전이 직접 운영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송 의원은 “공기업 중심으로 대규모 신재생 발전 사업의 기반을 조성하고 민간기업이 동참하는 사업 생태계를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신재생 발전 사업을 하는 경우에 한정해 두 종류 이상의 전기사업을 허가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유사한 개정안은 과거에도 수차례 논의됐다. 2015년 노영민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신재생 발전에 한전이 직접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당시 노 의원은 신재생 발전 사업의 수익성이 낮아 민간기업이 피하는 만큼 한전의 직접 진출로 산업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해당 법안은 소위에도 상정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2016년에는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7년에는 손금주 국민의당 의원이 같은 내용의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이 소규모 민간사업자 중심으로 진행돼 생태계 조성 속도가 더뎌 관련 기술 발전도 느리다며 한전의 참여로 상황을 해소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정부는 불공정한 경쟁 가능성을 이유로 반대했다.

그러나 2017년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이 수립되면서 분위기가 전환됐다.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은 2016년 기준 전체 발전량의 7%인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20%로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올해 정부가 그린 뉴딜, 디지털 뉴딜을 골자로 하는 ‘한국형 뉴딜’을 발표하면서 한전의 신재생 발전 직접 참여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는 지난 7월 그린 뉴딜의 하나로 저탄소·분산형 에너지 확산을 위해 신재생에너지 확산 기반을 구축하고 공정한 전환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대규모 해상풍력단지 입지 발굴을 위해 최대 13개 권역의 풍황 계측·타당성 조사 지원 및 배후·실증단지를 단계적으로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한전은 신재생에너지 발전에 직접 참여하게 되면 민간사업자와 전력 소비자, 한전의 주주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입장이다. 민간사업자만으로는 추진이 어려운 대규모 해상풍력 사업이나 한전 보유 기술이 필요한 사업에 한해 진출하면 신재생에너지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해상풍력 공동접속설비의 경우 한전이 투자 비용을 공동 부담하면 신재생에너지 사업자의 원가가 줄어 시장 활성화와 함께 글로벌 시장 동반 진출의 기회가 늘 것으로 전망했다. 한전은 미국 중국 일본 멕시코 필리핀 요르단 등에서 신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한전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신재생에너지를 확보하면 재무구조가 개선돼 한전의 기업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한전은 “민간 신재생발전사업자 등이 우려하는 신재생공인인증서(REC) 가격 하락, 망 중립성 훼손 등에 대해서는 입법 과정에서 해소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민간발전사들의 입장은 다르다. 한전의 신재생 발전 사업 직접 참여는 불공정 경쟁이라고 설명한다. 국내 전력 계통 전체를 관리하는 한전이 유리한 곳을 선점해 사업하거나 경쟁사를 견제하려고 일부러 계통망 접속을 지연시키는 등의 행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발전업계 관계자는 “발전, 송배전, 판매를 구분하는 전력사업 구조개편의 취지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공정한 시장경쟁 환경이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신재생에너지 생태계 조성 이전에 수익성 저하로 중소 민간발전사가 고사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민간발전사들은 생산한 전력을 한전에 판매하거나 REC를 판매해 수익을 얻는다. 신재생에너지 전력 생산량에 비례해 한국에너지공단으로부터 REC를 받는데 REC는 발전사 간 거래가 가능하다. 한전이 신재생에너지 전력 생산을 시작할 경우 REC 공급 물량이 급격히 늘어 가격이 하락해 민간발전사의 수익성이 낮아진다는 주장이다.

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