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기소는 검찰이 자체개혁 방안으로 도입한 수사심의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은 첫 사례로 남게 됐다. 1년9개월이라는 긴 수사 기간, 핵심 피고인의 구속영장 기각보다 시민사회의 뜻을 거스른 기소라는 점이 검찰로서는 더 뼈아플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심의위 권고 의견을 얼마나 신중하게 고려할 것인가의 문제를 놓고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간에 약간의 온도차도 있었다고 한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는 1일 이 부회장을 재판에 넘기면서도 “심의위의 권고를 진심 어리게 받아들였다는 점은 가감 없이 받아들여 달라”고 했다. 수사팀은 심의위 권고를 검찰 신뢰의 문제로 심각하게 판단했으며, 최종 결정에서는 서울중앙지검과 대검 간의 이견은 없었다고 밝혔다. 여러 시선에도 불구하고 이 부회장을 결국 재판에 넘기는 데에는 윤석열 검찰총장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뜻이 일치했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지난 6월 제시된 심의위의 수사중단·불기소 권고를 둘러싼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의 태도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대검은 “심의위의 권고를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며 이 부회장 등의 혐의 입증 여부를 다시 한 번 세세히 검증할 것을 수사팀에 지시했다. 이에 따라 수사팀은 금융·회계 전문가들을 상대로 의견을 청취하기 시작했다. 심의위 이후 이렇게 면담한 전문가가 90명에 가까우며, 이와 별도로 수백건의 논문도 분석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서울중앙지검에서는 계속해서 “기소를 하겠다”는 의견을 대검에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 대검에서는 전문가들의 의견 청취 등 검증이 제대로 마쳐지지 않은 상황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실제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증 작업 중이던 이복현 부장검사를 유임해 달라는 의견을 법무부에 냈지만, 지난 27일 인사 결과 이 부장검사는 대전지검으로 전보됐다. 서울중앙지검에 비직제로 특별공판2팀이 신설되고 수사에 참여했던 김영철 부장검사가 발령된 것도 ‘결론은 기소’라는 신호였다.
법률 지식이 없는 이도 참여할 수 있는 심의위의 의결 내용은 강제력이 없다. 하지만 검찰로서는 개혁과 신뢰쌓기를 위해 스스로 만든 시민 참여 제도를 어겼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 부회장 기소가 채널A 기자 강요미수 의혹 사건을 계속 수사하는 일종의 명분으로 작용할 것이란 추측도 제기된다. 앞서 이 사건에 연루된 한동훈 검사장은 심의위에서 수사중단·불기소 권고를 얻었었다. 묘한 대목은 한 검사장이 한때 ‘삼성 부정승계 의혹’ 사건 수사를 총괄했다는 점이다.
한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아무리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건이라 하더라도 그간 검찰이 1년 넘게 수사에 매달린 적은 없었다”고 했다. 검찰은 변호인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법원에서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최근의 엄격한 경향이 수사 기간에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올 들어 비로소 관련자 소환 단계로 나아갔는데, 이때 예기치 못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발생했다고도 검찰은 토로했다.
심의위 권고를 거스르고 장기화한 수사는 결국 오랜 뒤에 법원 판결로 평가받을 전망이다. ‘특수통’ 출신 변호사는 “주요 피고인이 구속된 것도 아니라서 국정농단 사태 당시만큼의 속도도 나지 않을 것”이라며 “판결 선고까지 5년이 넘게 걸릴 수도 있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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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