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산다] 제주도 유별난 벌초문화

입력 2020-09-05 04:05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우리 집과 바다 사이에는 폭 약 7m, 길이 60m 크기 밭이 있다. 여름내 이 밭에 잡초가 자라 바다 경관을 가리는 게 거슬렸다. 동네 동생에게 부탁해 풀을 벴다. 바다가 시원해졌다. 그 동생은 며칠 뒤 문중 산소 벌초를 하는데 분묘 주변에 제초제를 뿌리며 약을 남겨 집 앞 밭에 뿌려주겠단다. 엊그제 제초제를 뿌리고 갔다. 농업인들은 화물차에 500ℓ 이상 규모의 플라스틱 탱크를 싣고 다니며 자동차 엔진을 이용해 멀리, 넓게 제초제 또는 농약을 뿌린다. 그러고 보니 추석 벌초할 때가 됐다.

벌초는 보통 음력 8월 초하루 전후부터 추석 전까지 하게 된다. 먼 친척까지 괸당이 모두 모여 선대 묘를 벌초하는 모둠벌초(문중벌초)와 직계가족들이 모여 고조부 묘까지 벌초하는 가족벌초가 별도로 치러진다. 모둠벌초에는 가구에서 최소 1명 이상이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문중 행사의 참여도로 평가된다. 벌초한 뒤에는 묘소마다 제물을 차리고 차례를 올린다. 벌초 때 성묘를 함께 하는 셈이다. 그래서 추석 당일에는 성묘하지 않는다. 참여도 평가와 성묘라는 의미 때문에 제주도 아버지는 육지에 나간 아들에게 “추석엔 못 와도 벌초는 와야지”라고 당부한다.

그래서 제주도에서는 벌초방학을 했다. 음력 8월 1일 초·중·고와 대학교가 방학을 하고 학생들은 부모를 따라 벌초에 참여했다. 가정에서는 부족한 일손을 보태야 했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벌초하며 조상에 대한 효도를 체험토록 한다는 명분이었다. 관공서도 부서별 한두 명이 아니라 절반 이상이 벌초휴가를 내기도 했다. 그즈음 인사는 “벌초 햄수꽈”다. 그러나 벌초방학과 휴가는 2000년대 들어 8월 초하루 벌초에서 주말 벌초로 전환되며 의미가 퇴색했다. 지금은 그런 일이 있었지 하는 추억의 방학이 됐다.

육지에서는 여름 휴가철 고속도로 체증에 이어 추석을 앞두고 벌초 체증을 주말에 겪었다. 제주도는 휴가철 체증은 없지만 연중 유일하게 벌초 체증이 있다. 제주도에는 읍면동 단위에 대부분 공동묘지가 있는데 이 공동묘지 부근과 공동묘지에 이르는 중산간도로에 벌초 차량이 몰린다. 제주도에서는 보기 드믄 교통체증이다. 과거에는 음식을 차려갔지만 요즘은 식당을 이용하기 때문에 중산간도로 인접 식당은 이때가 대목이다. 지난해 점심을 먹으러 혼자 식당에 들어갔는데 유난히 손님이 많았다. 다른 손님과 합석하고 물었더니 “벌초잖아요”라는 답을 들었다. 곱게 차린 할머니가 20대에서 50대까지 가족을 거느리고 4인상 4개를 차지한 채 왁자지껄 밥을 먹는 모습이 부럽다.

나는 제주 이주를 계획한 뒤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있는 선대 묘소를 정비했다. 봉분석을 두르고 배수로를 넓혔다. 아랫단에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배롱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내가 자주 보지 못하더라도 큰 걱정은 덜고 싶었다. 형님들은 연로하셔서 나만큼 자주 다니지 못하신다. 동생이 뒤늦게 눈치채고 물었다. “형, 제주도 갈 준비하는 거구나.” 제주도 유별난 벌초문화를 보노라니 고향 생각이 새롭다. 올해는 제주식으로 벌초 가 성묘해야지.

박두호 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