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성진 (11) “정 목사 봐둔 땅 있나요”… 교회 개척 기대에 벅차

입력 2020-09-03 00:06
정성진 목사가 1996년 원목으로 부임했던 경기도 가평 광성기도원 전경.

담임목사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당시 광성교회는 선임 목사에게 1년마다 개척 지원을 해 주는 전통이 있었다. 내 위로 다섯 명의 선배가 있었다. 41살, 기다리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 김창인 목사님과 상의하지 않고 두 군데 교회에 이력서를 낸 일도 있었다. 물론 다 떨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기회가 찾아왔다. 1996년 초의 일이었다. 평소 얼굴만 알고 지내던 한 협동 장로님이 날 좀 보자고 하셨다. “정 목사님, 제가 사실 장로가 되면서 하나님께 ‘꼭 교회를 짓겠다’고 약속했어요. 교회만 지으면 뭐합니까. 목사님이 계셔야죠. 정 목사님께서 담임을 맡아주세요. 부탁합니다.”

무작정 그러겠다고 할 수는 없었다. “장로님, 감사합니다. 제가 기도한 뒤 답을 드려도 될까요.”

장로님도 당연히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아내와 두 달 동안 기도했고 그 길이 내가 갈 길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런데 사달이 생겼다. 그 장로님이 김 목사님께 자신의 계획을 말해 버린 것이었다. 김 목사님이 분노하셨다. “정 목사, 내가 정 목사 개척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게 있었어요. 그런데 이러면 섭섭합니다. 그 장로님 따라 나가든지 알아서 해요.”

일이 꼬였다. 적을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목사가 되지 않았던가. 김 목사님과 등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목사님. 목사님 뜻대로 하겠습니다. 교회에 남겠습니다.” 정적이 흘렀다. “그럼 바로 기도원 원목으로 가세요.”

경기도 가평에 있던 광성기도원 원목은 개척 지원이 결정된 부목사가 마지막으로 사역하는 곳이었다. 물론 확실한 약속을 하신 건 아니었다. 여전히 내 위에는 선임들이 많았다.

곧 담임목사가 될 거로 생각했을 아내에게 미안했다. “여보, 우리 이사 가야 해. 나 기도원 원목으로 발령받았어.”

아내는 다음 날 아침 곧바로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했다. 기도원이 산속에 있다 보니 아이들 통학을 위해 반드시 운전해야 했다. 정말 고마웠다.

우리 가족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갔다. 갑작스럽게 기도원 원목으로 발령낸 게 미안하셨는지 김 목사님이 기도원을 찾는 횟수가 늘었다. 인정받는 것 같아 내심 기뻤지만, 김 목사님은 한 번도 혼자 오시는 법이 없었다. 20여 명이나 되는 부교역자들을 모두 데리고 오셨다. 대식구 밥은 늘 아내 몫이었다.

기도원에 온 지 몇 달쯤 지났을까. 김 목사님이 “정 목사, 땅 좀 봐뒀나. 아직 안 봤으면 빨리 알아봐야겠다”고 하셨다. 드디어 내 차례가 온 것이었다. 담임목회를 할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주변 소개를 받아 경기도 남양주의 한 교회를 보러 갔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