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재가요양보호사로 10년째 일하고 있는 A씨(57·여)는 60대 후반 이용자 B씨에게 올해 초부터 지난달까지 성추행을 당해 왔다. 하지만 A씨는 참고 견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면서 일거리를 구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아서다. A씨는 31일 “돌봄을 그만두고 휴직 상태가 되는 게 너무 두려웠다”고 말했다.
코로나19에 장마까지 겹치면서 A씨는 B씨와 단둘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B씨는 A씨를 방으로 불러 성인 영화를 함께 보자고 자주 보채곤 했다. B씨는 스킨십 장면을 보고 “저런 거 해봤냐” “기분이 어땠냐”는 등 질문을 던졌다. 요리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며 A씨에게 몸을 고의로 접촉시키기도 했다. A씨가 “신고할 것”이라고 하면 B씨는 “장애인 판정을 받아 감옥 가도 금방 나온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돌봄노동자들이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이용자 측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하거나 방역을 이유로 외출금지 명령까지 당하는 등 각종 ‘갑질’에 시달린다. 하지만 일거리가 절실한 돌봄노동자들은 어떠한 저항도 할 수 없는 처지다.
재가요양보호사 C씨(59·여)는 지난 5월부터 일거리가 없어 강제 휴직에 들어갔다. 외부 감염 위험을 이유로 계약 종료 통보를 받은 것이다. 사실 돌봄 자체도 힘들었다. C씨는 “이용자 요구로 마스크나 손세정제를 사비로 사서 집으로 가져다주곤 했다”고 말했다. 또 퇴근 후에도 이용자의 보호자로부터 외출하지 말라는 지시와 함께 가족의 동선까지 일일이 보고해야 했다.
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 종합지원센터가 지난 4월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서울에 재직 중인 요양보호사 3456명 중 714명(20.7%)이 코로나19로 일자리 중단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수도권 감염이 시작된 현재는 더 많은 사례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돌봄노동자가 갑질에 취약한 배경에는 고용구조가 얽혀 있다. 돌봄노동자는 민간센터에서 비정규직으로 고용돼 이용자의 서비스 의뢰를 중개받는다. 이용자는 정부에서 수급받은 활동지원서비스 전용 전자상품권으로 센터에 시간당 1만3000원가량의 비용을 지불한다. 수수료를 빼면 돌봄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최저임금이다. 서울복지재단에 따르면 2018년 재가요양보호사의 월평균 노동시간은 108시간이고 급여는 91만원이다. 코로나19 여파로 노동시간이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상황은 더 열악하다.
감염 위험에 노출됐던 사례도 있었다. 대구에서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일하는 D씨(57·여)는 지난 4월 확진자와 접촉했던 40대 장애인을 맡았었다. 역학조사가 늦어져 장애인이 밀접접촉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암 투병 병력이 있는 D씨는 음성 판정이 나올 때까지 공포의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돌봄노동자들을 공공영역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개선 노력은 걸음마 단계다. 지난해 3월부터 지방자치단체가 돌봄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사회서비스원’이 문을 열었다. 월급제인 데다 방역 물자·교육 서비스가 제공돼 인기가 높지만 모든 돌봄노동자를 수용하기에는 아직 규모가 턱없이 부족하다. 오승은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부장은 “중앙정부 지원을 골자로 하는 사회서비스원법이 하루빨리 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