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 산하 국가공기업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의 시계가 2020년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4조원대 투자자 소송으로 지난 5년간 고전을 거듭하던 JDC의 핵심 프로젝트 ‘서귀포시 예래휴양형주거단지 조성사업’이 문대림 이사장의 활약에 힘입어 새로운 출발선에 섰고, 한국의 실리콘밸리를 표방하는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 제2단지 조성사업’까지 추진하고 있어서다. 대형 교육프로젝트인 ‘제주영어교육도시 조성사업’은 지난 1단계에서 4개 국제학교의 문을 열어 정주형 영어교육도시의 면모를 갖춘데 이어 국내 최우수 공과대학(원)을 유치해 4차산업 인재를 양성하는 2단계 사업에 착수한다.
지난 7월 첫날 JDC는 서귀포시 예래휴양형주거단지 조성사업의 소송전을 일단락했다. 2015년 대법원이 토지 수용 목적(유원지)과 사업 방향(휴양형 리조트 등)이 맞지 않는다며 토지반환 결정을 내리면서 해외 투자자와 4조원대 소송이 시작된 지 꼭 5년 만이다.
당시 투자사였던 말레이시아 버자야 그룹은 JDC를 상대로 350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를 상대로는 국제투자분쟁절차(ISDS)를 개시해 4조1000억원대 소송을 예고했다.
문대림 이사장은 지난해 취임 후 결정권을 쥔 버자야 그룹 탄스리 회장을 설득하기 위해 모든 네트워크를 총동원했다. 수차례 만남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거절 당했다. 끈질긴 시도 끝에 탄스리 회장을 만나 합의점을 끌어냈다.
JDC는 선방했다. JDC는 버자야그룹에 당초 요구금액의 절반가량인 실제 투자금 1250억원을 지급하고, 버자야그룹은 JDC와 제주도,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모든 소송을 취하하는 동시에 예래단지 사업을 JDC에 전부 양도하기로 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토지주와의 소송이다. JDC는 소송 결과에 따라 사업부지 60% 이상 확보하면 예래동 부지에서 다시 주민(토지주)들과 새로운 사업 방향을 찾을 계획이다. 문 이사장은 지난 7월 기자회견에서 “이제는 대규모 토지 개발 방식을 벗어나 주민이 원하고 제주의 공익에 부합하는 사업을 추진하겠다”며 첫 단계로 ‘제주도-JDC-토지주-지역주민 협의체’ 구성을 약속했다.
‘동북아 교육도시’ ‘한국판 실리콘밸리’를 꿈꾸는 JDC의 또 다른 대형 프로젝트도 올해 2단계 사업에 착수한다.
제주영어교육도시 2단계 핵심은 국내·외 유수의 공과대학(원)을 유치해 제주형 4차산업인 에너지, 환경, 모빌리티(미래교통) 분야 전문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JDC는 제주에서 키워진 석·박사급 인재를 JDC가 운영하는 첨단과학기술단지와 연계해 제주를 교육과 연구, 창업의 선순환 구조가 이뤄지는 ‘정주형 4차산업 교육도시’로 만들어간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최근 2단계 사업부지 조성을 위한 실시설계 용역을 발주했고, 현재 우리나라 최우수 대학과 공과대학(원) 이설을 논의하고 있다. 총 89만㎡에 대학, 주거시설, 근린생활시설을 조성하는 2단계 사업은 내년 첫 삽을 뜬다.
JDC의 대규모 핵심 프로젝트인 제주첨단과학단지 조성사업도 2단계에 착수한다. 첨단과학분야 우량기업을 유치해 제주지역에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청정 IT·BT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것으로, 지난 1단계 산업시설 용지는 100% 분양을 완료했다. 현재 제주시 영평동(110만㎡) 일원에 카카오 등 162개사가 입주했다. 지난해 입주기업 매출액은 같은 해 제주지역 총생산(GRDP)의 16.5%인 3조3000억원에 이른다.
제2첨단 과기단지는 현재까지 해당부지 토지주의 60%와 협의 매수가 완료됐다. 연내 토지 소유권을 확보해 내년 상반기 정주형 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기반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다.
아울러 JDC는 홍콩 람정그룹 자회사 람정제주개발이 투자한 서귀포시 안덕면 신화역사공원(398만㎡, 3조1645억원 투자 예정) 중 일부에 제주의 1만8000여 신화와 역사를 테마로 한 J지구 조성사업을 직접 추진해 제주적 가치를 투영한 고부가 관광지 조성의 교두보를 마련한다.
“주민 의견 경청하고 도민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 찾겠다”
“어떤 대단한 발전 전략도 주민의 지지가 없으면 멀리 나아갈 수 없습니다. 주민의 의견을 경청하고 도민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을 찾는 것이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앞으로 가야할 길입니다.”
지난 26일 집무실에서 만난 문대림(55·사진)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사장은 “JDC 설립 후 지난 18년간 개발사업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과 사업 환경이 크게 달라졌다”며 “지역 주민과의 소통과 공감 없이는 어떤 좋은 계획도 제대로 추진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규모 자본을 유치해 고급 휴양시설과 카지노, 빌딩을 지어 이익을 내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제주의 정체성인 환경 생태 평화 인권을 바탕으로 성장동력을 찾고, 개발 방향에 대한 도민들의 공감과 소통 속에서 사업을 계획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 이사장은 서귀포 예래단지 소송 당사자인 버자야 그룹 회장과 마주 앉아 엉킨 실타래를 풀면서 공감과 경청의 힘을 가장 많이 느꼈다고 했다.
그는 “당시 JDC에 대한 탄스리 회장의 불만이 커 예상보다 완강했지만 이야기를 나누면서 분쟁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며 “예래단지 문제를 해결하면서 소통의 중요성을 교훈으로 얻었다. 앞으로 개발센터가 추진하는 모든 사업에서 소통과 공감, 경청은 기본 원칙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
[이제는 지방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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