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인회(56·구속 기소) 녹색정보통신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로 드러난 것은 국회의원의 강력한 권한인 예산심의·확정권, 공공기관 자료요청권이 사실상 민간업체를 위해 활용된 정황(국민일보 8월 7일자 1·3면 보도)이기도 했다. 업체가 스스로 꾸린 부처별 예산 증액 방안이 여러 상임위원회를 통과하는가 하면, 정부부처가 의원실 질의에 대해 한 답변이 업체로 흘러나가기도 했다. 국회의원들은 부처를 상대로 “상시 도청탐지 장비를 도입해야 하지 않느냐”고 자주 질의했고, 이는 결국 부처들에 G사 제품 도입의 압력으로 작용했다.
30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허씨와 연결된 의원들은 국가정보원의 ‘국가 정보보안 기본지침’이 개정됐던 2014년 이후 여러 정부부처에 “상시형 도청탐지 장비를 도입할 필요성이 큰데 어떤 방안을 강구하고 있느냐”는 식의 질의를 했다. 국정원이 상시형 도청탐지를 권장한다는 취지였는데, 이는 사실상 G사 매출로 이어지는 일이었다. 업계에 따르면 G사는 관련 시장 점유율이 70%가량에 달했고 상시형 도청탐지 장비에 특화돼 있다.
허씨 측은 “국정원 보안 지침을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만 의원들에게 전했을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국정원이 강조한 대책들이 꼭 상시형 도청탐지 장비 도입에 국한되진 않았다는 점이다. 이동형 도청탐지, 국정원 협조 요청 등 여러 방안이 있었음에도 의원들의 질의는 상시형 도청탐지를 강조하는 쪽으로 모였다. ‘24시간 도청탐지’ 예산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너무 무감각하다”고 장관을 질타한 의원도 있었다.
이번 검찰 수사 이후 업계에서는 G사가 “국정원에 의해 성능이 검증됐다”고 평가되는 것에도 어폐가 있다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여러 국가기관에 납품하고 조달청 우수 제품으로 선정된 데서 알 수 있듯 G사는 기술력을 인정받아 왔다. 다만 G사의 영업을 잘 아는 한 인사는 “도청탐지 장비는 G사가 자체 개발한 것이 아니라 국정원이 관리하는 국가보안기술연구소의 기술을 이전받은 것”이라며 “G사는 제품을 팔 때마다 국가보안기술연구소 측에 로열티(특허권 등의 사용료)를 지급한다”고 했다. 허씨 측도 로열티 지급 사실을 인정했다.
허씨는 검찰 조사 및 구속적부심 과정에서 한결같이 “대리점과 같은 정당한 영업이었다”고 주장했다. 법인을 세워 G사와 계약하고 정당한 돈을 받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로비스트’ 역할이 엄연한 현행법 위반이며, 공무원 청탁 대가로 고문료 명목의 돈을 받았다가 유죄가 인정된 판례는 풍부하다는 게 법조계의 진단이다. 과거 ‘철피아 비리’에 연루된 일부 정치인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 정치”라는 변론을 폈지만 유죄가 확정됐었다. 이번 수사는 서울북부지검에서 공공수사부 역할을 담당해온 형사5부(부장검사 서인선)가 진행했다. 애초 수사하던 허씨의 임금 체불 등 근로기준법 위반 사건에서 파생된 변호사법 위반 혐의였기 때문이다. 허씨가 관여한 또 다른 사업인 생태계보전협력금 반환 사업 역시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다수 연루된 것으로 나타났다. 구속 기소된 허씨와 달리 G사 측은 사법처리되지 않았다. 알선수재 형태의 범죄에서 이익을 받은 사람은 처벌되지만, 이익을 건넨 이를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
이경원 구승은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