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F기관 문제점 찾아보려 해도 없다”-“아무 데나 서너 줄 바꿔, 아무렇게나”

입력 2020-08-31 04:06

올해 이뤄진 2019년 공공기관 경영평가 과정에서 기획재정부와 평가단 간부가 특정 공공기관의 평가에 대해 사전 논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황이 국민일보가 입수한 녹취록에 드러났다. 그동안 기재부는 특정기관에 대한 평가는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평가단이 하는 것이며, 기재부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고 설명해왔다.

국민일보는 지난 6월 19일 발표된 기재부의 ‘2019년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 참여했던 평가단 간부 C씨와 평가위원 D씨가 지난 5월 중순 통화한 녹취록을 30일 확보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평가단 간부 C씨는 “기재부에서 문의가 왔다. 그런데 ‘D기관 등의 (특정지표 점수를 낮추면) 반발이 심할 거다. 억울해할 것’이라고 기재부에 말해도 안 먹힐 것”이라며 “그래서 ‘평가위원들이 (점수를 낮추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고 기재부에 얘기해줬다”고 말했다.

기재부가 특정기관의 개별 지표 평가 점수를 낮춰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C씨에게 전달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C씨는 기재부 의견에 대한 평가위원들의 부정적인 입장을 다시 기재부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와 관련해 국민일보에 “전체적인 정부 정책 방향에 대해 언급하는 일은 있다”면서도 “특정기관이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평가단에 언급하는 것은 큰일 날 일”이라고 해명해왔다. 그러나 평가단 간부와 평가위원 간 녹취록 내용은 기재부 관계자의 해명과 상반된다.

이 녹취록에는 C씨가 특정기관에 대해서는 점수를 올리고 다른 기관의 점수는 낮추라는 취지의 지시를 한 사실도 드러난다. 평가위원 D씨가 “너무 티나게 E기관의 특정지표를 B+로 올려주는 것은 무리수”라고 반발하자 C씨는 “평가단 간부들 입장에서는 다른 지표 2개 올려봤자 해당 지표 하나 올리는 게 훨씬 편하다”며 “평정하는 입장에서는 해당 지표로 (점수를) 조정하는 게 편하니 그런 선에서 이해를 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C씨는 또 “‘(E기관에) B+를 주지 않고 B만 주고 다른 지표에서 좀 올려주면 되는데 평가위원 입장에서 좀 버겁게 생각한다’고 윗선에 전달하겠다”고 D씨를 달래기도 했다. 명확한 근거에 따라 기관 평가가 진행된 것이 아니라 사전에 등급을 정해놓고 ‘끼워맞추기’식 평가가 진행됐다는 의심을 살 수 있는 대목이다.

D씨가 “F기관은 지표에 문제는 없다. 찾아보려 해도 없다”고 반발하자 C씨는 “알고 있다”면서도 “일단 점수 내려놨으니까 (평가보고서 지적사항) 아무 데나 서너 줄 바꿔. 아무렇게나. 그래 봤자 톤은 똑같으니까”라고 했다.

녹취록에는 C씨가 평가단 간부의 연임을 거론하며 평가위원에게 점수 및 보고서 수정을 거듭 지시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C씨는 “(평가단 윗선에서) 점수를 조정해 달라고 하면 해 줘야 한다. 안 해주면 안 된다”며 “내 입장에서는 일단 (평가단 간부가 연임해서) 2년을 잘 가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D씨가 “평가등급이 바뀐 기관들이 있는데 등급에 맞는 지적사항을 찾을 수가 없다. 이렇게는 보고서를 쓰기 힘들다”고 말하자 C씨는 “올해는 윗선의 입김이 들어가겠다고 그러면 들어가게 해주는 게 맞다”며 “그렇게 해주고 내년에 더 공정성 높게 해줘야 한다”고 답변했다. 올해에는 평가단 간부들의 요구를 맞춰주고 공정한 평가는 내년에 하자는 취지다. C씨는 D씨와의 대화에서 “우리는 그래도 덜 하다. 다른 팀은 (점수가) 더 내려간 기관들이 허다하다”며 “우리는 (평가단 간부들 요구에 맞추는 게) 불합리하다는 걸 알고 있다”고도 언급했다.

과거 경영평가에 참여했던 한 교수는 “평가단 간부 연임은 기재부가 사실상 결정하는 것”이라며 “평가단 간부의 지시에는 기재부 의중이 반영됐을 수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기재부와 공공기관 경영평가단은 국민일보 보도와 관련해 “내부지침을 어겨 무단으로 평가점수가 수정됐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며 “경영평가단은 다수의 기관·지표·평가자 간 통일성과 균형을 맞춰가며 정당한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평가를 수행했다”고 밝혔다. 이어 “일관되고 공정한 평가기준 적용, 팀·평가자 간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개별 평가위원의 최초 평가점수는 종합논의 과정에서 변경될 수 있다”고 밝혔다.

기재부와 평가단은 또 “단계별 평가과정을 거쳐 기관별 최종 점수를 확정하는 단계에서 총괄반과 평가팀 간 최종 결과를 공유·확인하고 최종 등급을 확정했다”며 “다단계 논의 과정에서 개별 평가위원은 팀장 주관 평정회의에는 참석하나 그 밖의 평정회의에 모두 참석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팀원 공동서명은 교육 발표자료엔 포함돼 있지만, 이는 업무수행 참고자료 성격으로 평가 상황·업무 효율성 등을 감안해 탄력적으로 변경·운영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영평가단의 다른 간부 E씨는 국민일보에 “평가점수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평가위원들이 의문을 가질 수 있다”면서도 “그래도 다 동의를 받고 점수를 변경하는 것이고 오해가 조금 있는 것 같다”고 해명했다.

문동성 박재현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