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물러나더라도 1965년 수교 이래 최악이라는 한·일 관계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대체적이다. 아베 총리 집권 기간 동안 일본 국민의 대한(對韓) 감정이 크게 악화된 상황에서 차기 총리가 한·일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기에는 위험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극우적 시각으로 한국을 바라보던 아베 총리의 퇴장 자체만으로 한·일 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아베 총리는 집권 기간 중 국내 정치적으로 위기에 몰릴 때마다 ‘한국 때리기’ 카드를 꺼내들어 돌파구를 마련했다. 아베 총리를 상대한 박근혜정부와 문재인정부 모두 강경한 대일(對日) 기조를 표방하고 있어 한·일 관계는 매번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으로 몰렸다. 최근 한·일 관계의 가장 큰 걸림돌인 수출규제 문제 역시 아베 총리와 그 측근들이 주무부처인 외무성을 배제하고 독단적으로 추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베 총리 집권 기간 동안 한·일 관계의 긴장 국면이 이어지면서 한국을 바라보는 일본 국민의 시각도 매우 부정적으로 돌아선 상태다. 아베 총리의 후임자 역시 국내 분위기를 감안해 한국과 관계 개선에 곧바로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도리어 한·일 관계 개선에 섣불리 나섰다가 보수 지지층의 인기를 잃을 가능성도 있다. 갓 취임해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신임 총리로서는 한·일 관계는 후순위 현안이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다만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편향됐던 아베 총리가 물러나는 것 자체가 긍정적 신호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한·일 갈등을 노골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총리가 취임하면 제한적으로나마 관계 개선을 기대해볼 수 있다는 뜻이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30일 “한·일 관계는 지금보다 나아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단기간에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적어도 한국과 북한을 때리면서 우익을 결집하는 행태는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차기 총리가 한·일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 문제에서 유연성을 발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강제징용 해결을 위해 일본에 여러 제안을 했지만 아베 총리가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며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총리가 교체되면 징용 문제에서 조금 더 타협적인 태도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며 “한국이 기회를 포착해 대일 외교를 유연하게 가져가면 현재의 냉각 국면은 벗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역시 전문가를 인용해 차기 일본 총리가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NYT는 29일(현지시간) 아베 총리 후임자의 대내외 과제를 분석한 기사에서 “전문가들은 일본의 다음 총리가 한국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 억제와 장기적인 경제 침체 대응, 중국의 군사력 확대 대응, 연기된 도쿄올림픽 개최 여부 결정 등 민감한 과제에 직면한 상황에서 한·일 관계를 우선적으로 매듭지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미국이 대내적인 문제에 집중하느라 아시아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점도 ‘포스트 아베’의 한·일 관계 개선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미국은 오는 11월 대선과 자체적인 코로나19 사태 대응 등으로 아시아의 갈등 상황을 중재해줄 여력이 없다는 분석이다.
조성은 손재호 김지훈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