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에 거주하는 이모(41)씨는 10년째 전세를 살고 있다. 지난달 임대차 3법 발효 전 계약이 만료되면서 집주인은 5000만원을 올려주든지 집을 비워 달라고 통보했다. 이씨는 전세보증금 3억원으로 내집 마련을 시도했지만 대출을 최대한 받아도 8억원 상당의 인근 주택을 사기에는 현금이 부족했다. 이씨는 결국 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올려줄 수밖에 없었다. 이씨는 “생애 최초 내집 마련이 아닌 이상 5억원 이상의 현금 없이는 ‘인서울’ 내집 마련은 불가능해 보인다”면서 “현금 부자만 집을 살 수 있는 정책 때문에 내집 마련의 꿈은 정말 꿈으로만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주택자 투기세력을 타깃으로 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수요자의 1주택 마련마저 어렵게 하고 있다. 실제 정책에 영향을 받는 국민들이 크게 늘면서 전 국민을 부동산으로 불로소득을 얻으려는 투기꾼으로 몰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금을 강화해 투기세력을 옥죄겠다는 정책도 1주택자 증세 논란이라는 부작용에 직면했다. 현 정부 들어 표방하는 ‘부동산 시장 안정’이라는 목표도 모호하다.
정부는 올들어 서울 강남과 세종을 중심으로 한 집값 폭등의 원인을 ‘일부 투기세력’ 때문으로 보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30일 “부동산 시장을 왜곡하는 것은 투기세력과 이를 조장하는 일부 언론들”이라며 “임대차 3법 등 강력한 정책 효과로 연내 부동산 가격은 잡힐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장 가격은 정부를 비웃듯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지난주까지 12주 연속 상승했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이달 평균 가격이 사상 최초로 5억원을 넘어섰다.
이렇게 된 원인 중 하나는 정부가 부동산 정책의 목표를 모호하게 설정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23번의 각종 부동산 정책을 발표하면서 ‘부동산 시장 안정’을 앞에 내세웠다. 그러나 시장 안정이라는 게 부동산 가격 상승 자체를 억제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느 정도의 완만한 상승세를 유도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나마 최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나치게 오른 지역의 경우 일정 부분 조정이 필요하다”고 밝힌 게 시장 안정 의미를 유추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다. 하지만 정부가 과도한 상승세가 발생한 지역이 어디로 보고 있는지, 조정이라는 게 어떤 수준까지 하향시키는 것인지는 여전히 뚜렷하지 않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부동산 가격이 물가상승률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가야 한다거나, 경제 상황에 맞게 탄력적인 상승률로 통제하는 식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략연구부장은 “특정 지역의 집값 하락을 부동산 정책의 목표로 삼기보다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나타나는 하나의 부수적 효과로 봐야 한다”며 “그러지 못하니 정책이 늘 땜질식으로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동산 문제 장기적 해법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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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성규 전성필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