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담대할 수 있는 이유

입력 2020-09-01 00:08

여러분은 언제 두려움을 느끼십니까.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는 과정은 한마디로 ‘외적인 요인으로 인한 내적 작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우리 기억 속에 잔상으로 남아 엇비슷한 상황에서도 발현됩니다. 오히려 두려움이 배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아마도 그러한 두려움의 현장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복음을 전하다가 공회 앞에 서게 됩니다. 예수님이 심문당했던 바로 그곳입니다. 베드로에게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뼈아픈 장소이기도 합니다. 6절 말씀을 보면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가 참여했다고 나옵니다. 예수님을 심문하던 장본인들이며 십자가에 매달 것을 빌라도에게 요청한 자들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아마도 생명의 위협을 느낌과 동시에 큰 두려움에 휩싸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달랐습니다. 13절에는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으로 보고”라고 말합니다. 공회에 있던 사람들이 이상히 여길 만큼 베드로와 요한은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는 복음을 향한 확실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본문 12절은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라고 말합니다. 베드로의 고백이자 복음의 선포입니다. 이런 담대함은 과거의 두려움 섞인 베드로의 내면에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내면의 변화가 가능할 정도로 복음은 대단한 것일까요. 만약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심이 없었다면 베드로가 이러한 담대함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결국 예수님께서 진짜 부활하신 생명이심을 베드로가 그의 오감으로 경험했기에 그는 이제 대범한 사람이 됐던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내면뿐 아니라 삶의 태도를 송두리째 바꾸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24)는 말씀처럼 우리의 능력 되시는 복음을 믿음으로써 담대하게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둘째는 성령의 충만함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감이 넘쳐 외치는 것도, 영리하게 계산된 말을 하는 것도,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애쓰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당당하게 진리를 외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가 성령에 충만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성령의 충만함은 우리에게 담대함을 가져다줄까요. 우리가 담대하지 못한 것은 결국 힘의 열세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옳은 것에 대한 확신, 이길 수 있다는 확신, 보호하심의 약속이 수반될 때 담대함이 생성되거나 확장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령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은 단순히 능력이 주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그분의 존재적 강인함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충만함에 대한 바른 이해입니다.

두려움은 언제나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에 지배를 받는 삶은 피폐해질 것이고, 두려움을 이기는 삶은 활력과 생기가 넘칠 것입니다. 어느 편을 택하시겠습니까. 사탄은 믿는 자가 주눅 들게 할 만한 상황을 마주하게 하고 낙심케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승리하신 주님과 함께 성령께서 주시는 담대함을 가지고 의연하고 힘있게, 구별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엄혹한 시대에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시길 기도합니다.

김동진 일산하나교회 목사

◇일산하나교회는 진리를 보수하며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갈망하며 성경적 가치를 이 땅에 실현하는 생명 공동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