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사의를 전격 표명했다. 2012년 12월 이후 7년8개월간 재임하며 역대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웠으나 건강 악화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게 됐다. 한·일 관계의 열쇠를 쥐게 될 ‘포스트 아베’로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등이 거론된다.
아베 총리는 28일 기자회견을 열어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을 치료하면서 체력이 완벽하지 않아 중요한 판단에 문제가 생기거나 성과를 못 내는 상황이 벌어져선 안 된다. 국민의 기대에 자신을 갖고 부응할 수 없게 된 만큼 총리 자리에 계속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어 “지난 한 달 정도 ‘코로나19 대응에 차질이 생기는 일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만 해왔다. 지난 달 이후 감염 확산이 감소세로 돌아섰고 겨울철 대응책을 마련하는 중이어서 새로운 체제로 이행한다면 지금이 가장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아베 총리의 사의 표명은 지난 17일 게이오대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지 10여일 만이다. 2006년 9월 최연소 총리로 취임한 아베는 당시에도 궤양성 대장염을 이유로 1년 만에 조기 퇴진했다.
아베 총리는 집권 기간에 무소불위 권력을 유지했다. 보좌기관인 총리관저가 인사권을 틀어쥔 채 관료사회를 장악했고 집단자위권 법제화 등 여론이 반대하는 정책도 의석수를 앞세워 밀어붙였다. 그러나 코로나19 부실 대응과 잇단 측근 비리로 여론이 악화하면서 지지율이 30%대로 내려앉았고 정치적 영향력도 약화됐다.
일본 정계에선 아베 총리의 후임자 선출을 위한 경쟁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스가 관방장관과 이시바 전 자민당 간사장, 고노 다로 방위상,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지난 7~10일 여론조사에선 이시바 전 간사장이 24.6%로 차기 총리 지지도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시바 전 간사장의 당내 기반이 약한 편인 데 반해 스가 관방장관은 내각 2인자로 당내 신뢰도가 높다.
전문가들은 후보군 중 누가 포스트 아베 시대를 열더라도 당분간 한·일 관계 회복은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스가 장관은 아베 노선을 이어받아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고, 기시다 정조회장의 경우 자세는 온건해질 수 있겠지만 실질적 내용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이시바 전 간사장이 후임 총리가 될 경우 상당한 변화를 기대해볼 수는 있다”고 덧붙였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한국에 대한 일본 국내 여론이 좋지 않기 때문에 새 총리가 굳이 한·일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설 요인이 많지 않다”고 분석했다.
청와대는 공식 입장을 내고 “오랫동안 한·일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해 온 아베 총리의 급작스러운 사임 발표를 아쉽게 생각한다. 새로 선출될 일본 총리 및 새 내각과도 우호협력관계 증진을 위해 계속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임세정 임성수 이상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