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농구보다 중요하다… NBA 멈춘 ‘차별’

입력 2020-08-28 04:08
LA 레이커스 선수들이 25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레이크 부에나 비스타의 어드벤트헬스 아레나에서 열린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와의 2020 NBA 서부지구 플레이오프 1라운드 4차전 경기 시작 전 국가 연주에 맞춰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무릎 꿇기’ 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우리는 밀워키와 위스콘신주를 대표해 코트에 나서면서 높은 수준에서 뛰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면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도록 서로를 붙들어줘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기준에 부응해왔습니다. 이제 입법·사법 당국도 같은 일을 해주길 요구합니다.”

성명문을 읽는 미국 남자프로농구 NBA 밀워키 벅스의 가드 조지 힐과 스털링 브라운의 목소리는 어두웠다. 연대를 의미하는 검은색 옷을 입은 채 마스크를 쓰고 한 데 모인 장신의 선수들이 무거운 표정으로 이들의 뒤에서 지지를 나타냈다. 일정대로라면 불과 몇 시간 뒤 경기를 치러야 했지만 이들은 코트에 나서지 않기로 결의했다.

시즌 재개 전부터 NBA 선수들 사이에서 논란이었던 인종 문제가 결국 플레이오프 중단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낳았다. 벅스 선수단이 26일(현지시간) 오후 4시 예정되어 있던 올랜도 매직과 NBA 플레이오프 5차전 경기에 불참을 선언해 모든 플레이오프가 전면 중단된 데 이어 로스앤젤레스(LA) 연고의 레이커스와 클리퍼스 선수단이 남은 플레이오프 불참을 선언, NBA 시즌 자체가 무산될 위기다.

이날 앞서 벅스 선수단이 나선 건 지난 23일 벌어진 제이콥 블레이크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벅스의 연고 지역 위스콘신주에 위치한 케노샤에서 흑인 제이콥 블레이크가 현지 경관에게 7발의 총격을 당했다. 폭행 혐의가 있던 블레이크는 경찰의 요구에 응해 자신의 SUV 차량에서 내려 무릎을 꿇은 채 차에 기댄 상태에서 총을 맞았다. 뒷좌석에는 아들 3명이 탄 상태였다.

스포츠전문매체 디애슬레틱에 따르면 벅스 선수단은 3시간 동안 이어진 선수단 회의 끝에 모여서 성명을 발표하고 경기 불참을 선언했다. 이들은 “제이콥 블레이크를 위해 정의를 실현해달라고, 또 경관들에게 책임을 물어달라”고 요구했다. 이어 “지금까지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있는 위스콘신주 입법 당국이 경찰의 책임, 폭력성, 형사 개혁 조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밀워키 벅스 선수단이 제이콥 블레이크 피격 사건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같은 장소에서 열릴 예정이던 서부지구 플레이오프 1라운드 5차전 올랜도 매직전에 불참해 경기장이 텅 비어있는 모습. AP연합뉴스

사태는 더 크게 번졌다. 디애슬레틱은 관계자를 인용해 이날 벅스를 포함해 NBA 구단 선수들이 모여 회의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회의에서 레이커스와 클리퍼스 선수단은 플레이오프가 재개되더라도 참여하지 않기로 투표로 결정했다. 다만 벅스를 포함해 다른 팀들은 여기 동의하지 않았다. 두 팀이 플레이오프 전면 불참을 선언하면서 현지에서는 남아있는 다른 모든 일정이 취소될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보도된 회의 모습에 따르면 선수들 역시 사태가 예상보다 크게 번지자 당혹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레이커스와 클리퍼스의 투표 결과가 공개된 뒤 마이애미 히트의 포워드 유도니스 하슬렘이 ‘두 팀이 없으면 어떻게 시즌을 진행하느냐’고 묻자 NBA의 대표 스타인 레이커스의 르브론 제임스가 말없이 일어나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두 팀의 선수들이 그 뒤를 따르자 남은 선수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이와 함께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도 벅스와 같은 연고의 밀워키 브루어스를 비롯, 시애틀 매리너스 선수단까지 2개 구단이 같은 이유로 출전을 거부해 2경기가 취소됐다. 프로축구 메이저리그사커(MLS) 사무국도 같은 이유로 5경기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흑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테니스 스타 오사카 나오미도 27일 열리는 여자프로테니스(WTA) 웨스턴서던 오픈 4강전에 같은 이유로 출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