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는 2단계, 조치는 1.5단계…원칙과 거리 먼 ‘거리두기’

입력 2020-08-28 00:15
국민DB

정부는 두 달 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신천지 집단감염 사태를 계기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3단계로 구분하고 각 단계의 적용기준을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로 단계 조정이 필요할 땐 예외 규정을 내세우며 격상을 미뤄 스스로 세운 기준의 신뢰성을 깎아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6월 28일 ‘거리두기 단계별 기준 및 실행방안’을 발표했다. 생활 속 거리두기 등 각종 거리두기 명칭을 ‘사회적 거리두기’로 통일하고 1~3단계로 나눴다. 참고 지표로는 2주간 일 평균 확진자 수, 감염경로 불명 사례(깜깜이 환자) 비율, 관리 중인 집단발생 건수, 방역망 내 관리 비율이 제시됐다. 이 지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해 단계를 조정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기준은 7월 초부터 흔들렸다. 정부 브리핑에 따르면 지난 6월 21일부터 2주 동안 참고 지표 4개 중 일 평균 확진자 수를 제외한 지표는 모두 1단계 기준치를 넘어섰다. 광주 광륵사발 집단감염이 오피스텔·교회·요양원 등으로 확산되면서 지역사회 감염자가 급증하던 때였다. 깜깜이 환자 비율은 10.7%로 1단계 기준의 2배를 넘어섰고 방역망 내 관리 비율도 80% 미만으로 1단계 기준을 초과했다. 일 평균 확진자 수 역시 46.9명으로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당시 전문가들 사이에서 거리두기 2단계 적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정부는 “1단계에서 위험도가 가장 높은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면서 거리두기를 조정할 수준은 아니라고 밝혔다. 결국 광주, 전남 등 지방자치단체는 자체적으로 거리두기를 2단계로 격상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전국이 일일생활권인데 지역마다 다른 방역지침을 적용하면 타 지역으로 인구가 이동하는 등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초 방안에 없던 ‘권고’ 단계를 임의로 만들어 격상을 미루기도 했다. 8월 초부터 수도권을 중심으로 재유행한 코로나19가 전국적 전파 양상을 보이자 정부는 16일 0시부터 거리두기를 2단계로 격상했다. 하지만 사실상 1.5단계라는 비판이 일었다. 2단계가 적용되면 실내 50인·실외 100인 이상 집합 금지, 고위험시설 운영 중단 등 조치가 내려지지만 강제가 아닌 권고에 머물렀다. 그마저도 서울과 경기도 지역에만 적용했다.

정부는 지난 23일 뒤늦게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를 전국으로 확대 시행했지만 같은 날 대한감염학회 등 감염병 관련 9개 전문학술단체는 성명서를 내고 거리두기 3단계 격상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처럼 정부가 정한 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하지 않으면서 정책 신뢰성을 스스로 떨어뜨렸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 교수는 “정부가 기준을 제시했으면 제대로 지켜야 하지만 2단계라 정하고 1.5단계 수준의 조치를 내놓는 등 원칙을 바꿨다”며 “매뉴얼을 상황마다 바꿔 적용하면 어떤 국민이 정부를 믿고 따를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