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가 26일부터 3일간 2차 파업에 들어갔다. 이번 파업 역시 대한의사협회가 주축이지만 이전과 달리 의대생을 비롯해 전공의와 전임의 등 젊은 의사(예비의사)들까지 파업에 동참하며 집단행동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반면 정부는 정책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강력한 추진 의지를 밝히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이번 파업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코로나19 확산 상황에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이기적인 집단행동에 나섰다며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의대생이 의사국가시험 응시도 취소하고, 비난이 뻔히 예상되는 ‘파업’까지 불사하며 정부정책에 반대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의사수에 대한 문제는 최근의 일이 아니다. 그동안도 정부는 OECD 데이터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의사수가 부족하다고 주장해왔고, 이에 반해 의료계는 의사수의 문제보다 지역별·과목별 편중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하며 팽팽이 맞서왔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국내에서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확산되며 지역 의료진만으로 감당하기 힘들어진 상황이 됐고, 의사수(공공의료 전담의사)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가 오는 2022년부터 10년 간 의대 입학 정원을 매년 최대 400명씩 늘리겠다고 발표하며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됐다. 이에 의사들은 철회를 요구하며 병원에서 거리로 나왔고, 의료현장에서는 진료 뿐 아니라 수술도 미뤄지고 있어 환자들의 불편도 큰 상황이다. 특히 많은 의과대학생들이 국가시험을 취소해 당장 내년 의사부족이 현실화 되게 됐다.
의대가 생기고 정원이 늘어날 것이라는 소문은 의과대 진학을 준비하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는 희소식이 됐다. 하지만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향방을 알 수 없게 되자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이다. 의대 입시를 준비하는 한 학생은 온라인 수험생 커뮤니티에 “이번에 의대생 전체가 동맹 휴학하면 내년도 의대 신입생은 못 뽑는 건가요? 휴학한 학생 수만큼 신입생 수는 줄어드는 건가요. 의대를 희망하고 있는데 답답합니다. 만약에 의대 정원 늘려도 대학생이나 직장인이 몰려들면 고3은 불리하지 않을까요”라며 걱정을 토로했다.
의과대와 의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은 어떨까. 예비의사임에도 현 의료정책에 대해 큰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조승현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장은 “뒤틀린 의료전달체계와 고질적인 저수가 문제를 그대로 두고 의사만 늘리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미비한 의료전달체계와 필수의료 분과 기피 현상의 원인은 무시하고 의사 수 증원을 통해 표면적인 문제만 해결하겠다는 것인데 의대 정원확대는 의료의 질 저하와 결국 의료시스템의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고, 결국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투쟁의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전공의들은 현재의 의료 교육의 부실함을 지적하며 의료질 저하 등의 부작용을 우려했다.
김중엽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 대표는 “밥그릇 투쟁이라고 얘기를 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현재 의대 교육이 굉장히 부실한 곳이 많다. 한 교수님을 10명씩 쫓아다니거나 교원이 없어 다른 병원에 파견 나가기도 한다. 실습 대신 강의로 대체하기도 하는 등 부실한 교육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의사를 많이 양성하면 좋은 것 아니냐고 하는데 국내 의료인력 양성 능력을 봐야 한다. 의사 수만 늘린다면 안 될 것이다”라며 “지금도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져 모든 환자가 수도권에 몰리는 상황인데 지역에 의사를 묶어 놔봤자 배울 수 있는 환자가 없어 실력이 떨어질 것이고, 의무복무만 지나면 수도권으로 몰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병원계는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대한병원협회는 의사 증원 및 공공의대 설립에 찬성하고 있지만 협회 내부에서는 반대 목소리가 작지 않다.
정영호 대한병원협회장은 “지방뿐만 아니라 웬만한 민간병원이 결원 충원에 애를 먹고 있다. 전공의 특별법으로 인해 전공의 업무는 반절로 줄었는데, 이를 대신한 인력충원은 요원한 것이 현실”이라며 “의대 정원은 수년간 경직되어 있었다. 적정 인력이 있어야 의사의 권익과 사회적 역할 확대되고 도움이 된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반면 박진규 대한지역병원협의회장은 “지방 의사구하기 어려운 것 사실이다. 그러나 특정 파트가 부족한 것이지 전체 인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사람보다 시스템의 문제가 크다”라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의사수를 늘리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성종호 정책이사는 “수가의 변화가 없다면 환자의 수가 줄어들면 손해다. 의료기관에서 의사를 뽑을 이유가 없다”라며 “전 국민이 안 가는데 의사를 가라고 하면 안 된다. 결국 도시로 몰린다. 의사의 진료도 줄어드니 치료 수준도 떨어질 것이다. 중증질환을 보는 의사가 많이 가도록 하려면 수가를 개편하거나 근무여건을 개편해야 한다.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는 의사수 증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정부의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지역불균형의 문제가 의사수가 아닌 인력 배치 때문이라고 하는 의료계의 주장에 대해 “단순 수치로도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병원 대기시간이 길고 제대로 된 진료도 받기 어렵다는 건 이미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또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통계는 10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면서 “정부도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려고 했지만 의사단체의 반대 때문에 추진이 안됐다. 그렇게 밀린 숙제를 하려니까 의사들이 파업까지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의대 정원으로 의대생들이 제대로 졸업한다고 가정했을 때 많아야 3000명이다. 그 중 상당 부분은 공중보건의사 등으로 군복무를 해야 하는데, 최근 여학생과 의학전문대학원생 비율이 늘면서 공보의는 10년 전에 비해 1500명으로 줄었다”며 “결국 취약지역 등의 의료보건기관에서 활동했던 의사들이 대폭 감소한 거다. 또 기피 과목에 지원하는 전공자들이 줄면서 돈이 되는 진료 등에 의사가 몰리는 상태가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의사 부족 문제가 점점 더 심화되는 중이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가 됐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 의사 수는 13만명이나, 현재 활동의사 수는 10만명에 불과하며, OECD 평균만큼 필요한 활동의사는 약 16만명으로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지역별로 보더라도 서울은 인구 1천명당 의사 수가 3.1명인데 반해, 경북 1.4명, 충남 1.5명으로 지역 편차가 크고 지역 의사수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우리나라 의사 10만명 중 필수진료과목인 감염내과 전문의는 277명, 소아외과전문의는 48명 등 일부 과목은 의사수가 적은 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미옥·유수인·노상우·한성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