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앞으로 대출 규제 기준도 한국감정원 시세를 중심으로 정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현재 규제 지역 내 주택 구매 시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의 한도를 정할 때 민간 통계인 국민은행(KB) 시세를 주로 쓰고 있는데 이를 국가공인통계인 감정원 시세로 바꿔 나가겠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국토부는 대출 규제 주관 부처인 금융위원회와 협의에 착수했다.
그러나 상당수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실수요자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이로 인해 주담대 한도가 더 줄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KB 시세는 협력 중개업소로부터 실거래가와 호가를 같이 취합하는 반면 감정원은 중개업소가 입력한 실거래가를 바탕으로 ‘거래 가능 가격’을 추정해내는 방식이다. 한 시중은행 대출 담당자는 27일 “통상 감정원 시세가 KB 시세와 비슷하거나 낮게 나오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현금 실탄이 넉넉지 않은 실수요자로서는 감정원 시세 적용으로 바뀌면 대출 한도가 줄어드는 부담이 있다.
서울 강서구에 있는 등촌주공8단지아파트(전용면적 41.85㎡)의 경우 KB 시세에 따르면 일반평균가가 5억4000만원이지만, 감정원 시세에서는 상한가와 하한가의 평균가가 5억500만원으로 KB 시세보다 3500만원이 적다. 실수요자가 이 아파트를 구매할 때 정부 방침에 따라 담보인정비율(LTV) 한도인 시세의 40%까지 대출이 나온다. KB 시세에 따르면 2억1600만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감정원 시세를 적용하면 2억200만원으로 한도가 1400만원 감소한다. 동대문구의 전농삼성래미안아파트(전용면적 59.93㎡)는 KB 시세 일반평균가(6억6000만원)와 감정원 시세 상·하한평균가(6억500만원) 차이가 5000만원 넘게 난다. 실수요자가 받을 수 있는 대출 한도도 2200만원으로 벌어진다.
반대로 지난해 12·16 대책에 따라 대출이 원천 차단된 15억원 초과 고가 아파트에 대해서는 대출 길이 오히려 열리기도 한다. 서울 양천구의 목동2단지아파트(전용면적 83.52㎡)는 KB 시세를 적용하면 일반평균가가 15억1500만원이라 주담대를 못 받지만, 감정원 시세에서는 상·하한평균가가 14억5500만원이기 때문에 4억7100만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서민의 내 집 마련보다는 중산층이나 자산가의 ‘갈아타기’에 더 유리한 결과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실제 주담대를 집행할 은행에서도 고민이 많다. 은행권에서는 그동안 관례로 1층에 대해서는 KB 시세 하위평균가를, 그 외의 층에 대해서는 일반평균가를 적용해 왔다. 그러나 감정원 시세는 하한평균가, 상한평균가만 있어 평균을 적용할지, 상·한평균가를 적용할지 미지수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