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미국에선 ‘식전에 쿠키와 아이스크림을 먹고 탄산음료를 마셔라!’라는 광고가 있었다. 오늘날 상식에 반하는 이 광고는 설탕 정보 주식회사(Sugar Information, Inc.)라는 단체가 만들었다. 이 단체는 일련의 광고를 통해 설탕이 다이어트에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선전했다. “우리의 몸은 설탕이 들어오자마자 에너지로 바꾸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식욕이 감소한다” “설탕 1티스푼의 열량은 18칼로리밖에 안 된다”라는 주장이 근거였다. 짐작했겠지만 ‘설탕의 영양학적 역할에 관한 과학적 연구를 사명으로 한다’는 설탕정보 주식회사는 설탕 생산자와 기업의 홍보를 위해 세워진 곳이었다.
‘음식에 대한 거의 모든 생각’은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라고 당부하는 책이다. 철학자인 저자는 책에서 음식을 둘러싼 여러 주장과 사실을 이리저리 헤집어 놓는다. 그러면서도 정답을 제시하진 않는다. 저자 스스로 책의 목적이 “편협한 태도로 이런저런 방법을 추천하려는 확정적인 서술이 아닌 토론을 제공하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플라톤이나 장 자크 루소 같은 역사 속 철학자들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음식에 대한 생각과 식습관도 책에서 함께 풀어낸다.
음식이 먹는 음식도 당신을 만든다
저자는 호주 퀸즈랜드의 파인애플 밭을 지나면서 ‘음식이 먹는 음식’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건조하고 푸석푸석한 땅에 영양분을 공급해 파인애플을 기르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곳 농부들이 버리는 온갖 폐기물 역시 파인애플에 흡수되고 있다는 것이다. 효율화를 위한 단일 작물 경작이 더 많은 비료와 더 많은 살충제를 요구하는 현실, 식품 유통에 쓰이는 용기 등을 통한 화학물질 노출도 꼬집는다. 가소제인 비스페놀A가 매년 30억㎏이나 미국 내 음식 사슬에 들어오는 것도 이러한 사실과 연관 짓는다.
‘음식이 먹는 음식’ 문제는 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육류 생산 등에 투입되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제와 항생제, 사료도 인간 호르몬을 교란할 위험성이 있다. 연어 특유의 분홍색을 내기 위해 분홍색 염료가 잔뜩 들어있는 정제를 양식 과정에서 사용한다는 내용 역시 충격적이다. 저자는 특히 가축 사료와 농업용 비료에 들어가는 대두(大豆) 문제에 집중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두는 공업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단백질은 변성되고 발암 물질 수치는 높아진다…‘대두 이소플라본’은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구조가 비슷하기 때문에 전혀 예상치 못한 특정한 암과 갱년기 증상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이를 섭취한 부작용은 인간에게 나타난다. 저자는 뉴욕대의 마틴 블레이저 교수를 인용해 “확실히 어릴 때부터 항생제에 노출된 아이들이 성인기에 비만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한다. 대두 섭취가 갑상선 질환 및 내분비 기능 저하와도 관련 있어 영국에선 생후 6개월 전까지 대두가 들어간 분유를 먹이지 말라고 공식 권고한다는 사실도 소개했다.
더욱이 이는 사회 문제와도 연결지을 수 있다. 일터로 내몰리는 주부가 많은 저소득층에서 몸에 좋지 않은 식재료로 만든 패스트푸드 등을 섭취해 비만이 더욱 심화된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미국과 영국에서 지역별 소득과 비만의 상관관계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보여준다. 문제를 심화시키는 한 편에는 정부 정책의 잘못된 우선순위가 있다는 비판도 잊지 않는다. 옥수수유, 대두, 액상 과당 같은 좋지 않은 식재료를 생산하는 농가에 보조금을 지급해 좋지 않은 식재료의 생산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저자는 “비만의 확산은 19세기에 구루병과 장티푸스가 유행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불평등과 공공 정책에 대한 잘못된 우선순위의 부끄러운 흔적”이라고 비판한다.
철학자의 식탁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좋은 음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책의 또다른 재미다. 저자는 “철학자들은 우주의 본질, 진리와 주장의 차이, 삶을 잘 사는 방법 같은 주제뿐만 아니라 음식에 관해서도 깊은 사색을 했던 사람들”이라며 중간중간 이들의 식생활과 음식에 대한 생각을 풀어낸다. 놀라운 통찰이 있는가하면 황당한 편견도 엿볼 수 있다.
플라톤은 약 2000년 전에 신선한 과일과 견과를 기본으로 하는 식단을 추천했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이 끼니마다 고기를 먹으려 한다면 세상에 음식이 충분하지 않게 될 것이고 자원을 얻기 위한 경쟁이 벌어져 결국 자연이 파괴되고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육류 소비를 위해 숲을 벌목하고, 사막화가 일어나는 오늘의 상황을 내다본 것 같다. 장 자크 루소도 자연이 주는 “단순한 음식이 주는 기쁨”을 강조했다. 저자는 루소에 대해 “빵, 치즈, 약간의 와인만 있으면 누구나 최고의 미식가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라고 적었다.
반면 니체의 식습관은 다소 엉뚱하다. 과일과 채소를 지성의 적들이 선호하는 음식으로 취급한 데 이어 고기에 집착했다. 식사량은 많은 것이 적은 것보다 낫고, 사람의 위는 꽉 차 있을 때 소화가 더 잘 된다는 믿음도 갖고 있었다. 소화기 문제로 채식을 시도했다가 존경하던 리하르트 바그너의 영향으로 중단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저자는 “니체는 식단을 결정할 때도 예외성을 추구하는 사고방식을 따랐다”며 “그런 믿음 덕분에 그는 편두통과 소화 불량과 이른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렀다”고 비꼰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은 지나치게 자연 그대로라면서 거부하고 통조림 과일과 채소를 선호”한 장 폴 사르트르의 사례도 생뚱맞긴 마찬가지다.
철학자는 아니지만 음식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보여준 사례도 소개한다. 기술과 속도를 찬양한 이탈리아 미래파의 경우 특이하게 이탈리아에서 발원하고도 ‘파스타를 추방하자’는 과격한 주장을 펼쳤고, 히틀러는 고기를 먹는 것을 보면 인간의 시체를 먹는 광경이 떠올라 채소를 삶은 죽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7부 36장으로 된 책의 결론은 7부 제목인 ‘내가 먹는 음식을 남이 결정하게 두지 마라’로 귀결된다. 끊임없는 회의를 통해 근대 철학의 출발점이 된 데카르트를 인용해 모든 음식을 의심해 자신만의 음식을 새로 구축하라는 것이다. 책 제목처럼 음식에 대한 방대한 내용을 담다 보니 책이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다. 기존 식품 과학에 대한 회의 과정에서 “음식에 소금을 마음껏 첨가해도 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이 역시 저자의 말대로 의심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