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코로나19가 심각해짐에 따라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부쩍 길어졌다. 나들이마저 망설여지는 가운데 밖에 나가지 않고 혼자 즐길 수 있는 독서가 주목받고 있다. 실제 온·오프라인 서점 매출도 작년 비슷한 시기보다 많이 올랐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소설책을 펼쳤지만 막상 독서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독서는 글의 내용을 파악하는 과정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요약은 해볼 만하지만 독후감은 어렵게 느끼는 원인도 이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독서는 글만 읽을 줄 알면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알고 보면 생각보다 다양한 방식이 있다. 자세히 읽는 정독, 빠르게 읽는 속독, 소리 내어 읽는 음독, 속으로 읽는 묵독, 필요한 부분만 읽는 발췌독을 비롯해 더 깊이 읽는 방식도 있다.
글 속 어휘의 뜻을 정확하게 알아보고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는 것은 독서의 시작이다. 하지만 독서의 완성이라고 보기에는 얼마간 아쉬움이 있다. 더 나아가면 원인과 결과를 구분하고 구조를 분석하는 것까지 생각해볼 수 있다. 이후에는 이야기 뒤에 숨겨진 내용을 짐작하는 과정이 이어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문장 안에 함축된 의미를 찾아 내용을 확장하는 것이다. 이때 각자의 사전지식에 따라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읽힌다. 하나의 글이 수많은 방식으로 읽히면서 비로소 독후감도 시작된다. 그래서 맥락을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 “외식하자”는 제안에 “요즘 코로나19가 심각하대”라고 답변한다면 거절한다는 말은 없지만 우리는 거절의 뜻으로 읽는데, 이것이 맥락이다. 일상에서 흔히 겪는 맥락은 독서에서 더 복잡하고 섬세하게 드러난다.
비판적으로 읽는 시각도 필요하다. 책으로 나왔다고 해서 모두 옳고 동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더 좋은 방향은 없는지, 사실과 의견을 떼어놓고 의견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부족하진 않은지, 혹시 잘못된 주장을 펼치고 있진 않은지 판단해보는 것도 중요한 독서다. 이후에는 이야기를 재구성하거나 결말 뒤에 이어질 이야기를 상상해볼 수도 있다. 이 단계까지 오면 한 권의 책이 남기는 발자국 깊이가 확연히 달라진다. 여러 권을 읽는 것보다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는 것에 무게를 두게 되는 순간이다.
소설뿐만 아니라 소설을 둘러싼 요소까지 살펴보면 읽는 방식은 더욱 다채롭다. 먼저 작가를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다. 글을 쓴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살펴보고 그에 따라 작품도 여러 시각으로 다뤄보는 것이다.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지만 작가의 가치관이나 태도가 드러날 때도 많다 보니 이야기가 다른 질감으로 읽힐 때도 잦다. 그에 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기도 한다. 또 다른 방식은 누구를 위해 쓴 작품인지 따져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단순한 문장과 구성으로만 쓰여서 심심하게 읽혔던 소설이, 장애가 있는 아동을 위해 쓴 소설이라면 사뭇 다른 인상으로 읽힐 것이다.
시대도 작품에 영향을 줄 때가 많다. 같은 내용이더라도 발표된 시기에 따라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하고 때로는 반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발표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작품이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재조명받기도 하고, 호응이 이어졌던 작품에 어느 순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 외에 모든 조건을 다 떼어놓고 소설 그 자체만 두고 판단하는 방식도 있다. 소설의 주제와 상징을 외부가 아니라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다양한 독서 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소설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사회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의미를 정확하게 알아듣고, 숨은 목소리를 짐작하고, 말하는 이의 삶을 따라가 보고, 누구를 향한 목소리인지 살펴보고, 어느 시대에 나온 목소리인지 생각해보고, 때로는 오롯이 그 목소리만 집중해보기 때문이다. 실내에서 글을 많이 찾게 되는 요즘, 이 글도 사회를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을 더할 수 있다면 좋겠다.
전석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