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가장 위대한 표적

입력 2020-08-31 00:08

오늘 본문을 통해 기적과 표적의 진정한 목적, 우리의 신앙생활에 무엇이 우선돼야 하는지 알게 될 때 미성숙함에 머물러 있는 신앙에 엄청난 도전이 있을 줄 믿습니다.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요 4:45)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한 이유가 무엇이죠. 바로 ‘표적과 기사’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오신 메시아’로서 영접한 게 아니라 그분이 행하신 ‘일’ 즉 기적과 표적을 영접했습니다.

한국교회 성장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길거리에서 북을 치며 사탕만 나눠줘도 아이들이 줄을 섰고 ‘문학의 밤’ 행사에 북새통을 이루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 같은 성장엔 장점뿐 아니라 단점도 있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세상이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고 외칠 때 “예수 믿으면 잘 살 수 있다”는 기복적 소식을 듣고 교회를 찾았습니다.

이후 좋은 밭에 뿌려진 씨앗처럼 건강한 복음을 듣고 정착한 성도도 있지만, 가시밭에 뿌려진 씨앗처럼 환난과 고난이라는 가시에 걸리고 넘어져 교회를 떠난 교인들도 있습니다. 지금도 ‘언젠가 떠날’ ‘주님 오실 날엔 뽑힐’ 쭉정이 교인들이 알곡과 함께 자라고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표적과 기사를 쫓는 갈릴리인들을 책망합니다. 예수님이 가나에서 ‘행하신’ 기적의 소문을 듣고 자기 아들의 병 고침을 위해 달려와 간청하는 왕의 신하를 책망하지 않은 것과 차이가 있습니다.

갈릴리인들이 표적을 구한 건 ‘시험’이었기 때문입니다. 믿지 못하면 계속 조건을 겁니다. “당신이 어떻게 하는지 본 뒤 내가 믿을지 말지 고민하겠다”고 하거나 ‘좋은 배우자를 만나게 해주시면’ ‘내 병을 고쳐주시면’ ‘원하는 직장에 합격하게 해주시면’ 등의 조건입니다.

놀랍게도 이런 사소하거나 성숙하지 못한 개인적 요구를 하나님은 종종 들어주십니다. 그 이유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메시지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영적으로 어리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선물이 필요한 것과 같습니다. 초대교회가 태동할 때 사도들을 통해 기사와 표적들이 나타났습니다. 한국교회가 성장할 때도 많은 기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교회가 세워져야 할 선교지에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기적과 표적을 추구하는 자들을 책망하신 건 성숙한 신앙의 태도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표적은 헬라어로 세메이온인데 ‘표시’ ‘징조’를 뜻합니다. 표적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표시임을 깨닫고 그 방향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런데 이방에 있는 자들에게는 어떤 표적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수가성 우물가 여인 앞에서도 주님은 ‘말’을 주고받았을 뿐이죠. 사마리아 동네 사람들도 예수님의 ‘말’을 듣고 믿었습니다. 기적은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게 기적과 표적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게 아닙니다. 지금도 주님은 필요하시면 언제든 기적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면’이 중요합니다. 어떤 성도는 기적과 표적 없이도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예배하는 데 지장이 없습니다. 왕의 신하 역시 오직 선포된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을 뿐인데 죽은 아들이 살아나고 온 집안까지 구원을 받았습니다. 죽은 아들이 살아나서 믿은 게 아니라 오직 말씀을 믿어 아들이 살아났죠.

이 위대한 말씀은 문자로만 갇혀있지 않고 영원히 살아서 우리 곁에 있습니다. 살아계신 전능자의 영광스러운 말씀인 것입니다.

박희정 목사(인천평강교회)

◇박희정 목사는 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 소속 인천평강교회를 섬기고 있다. 트랜스포메이션 워십 대표도 겸하고 있다. CCM ‘그 사랑(아버지 사랑 내가 노래해)’ ‘주님의 임재 앞에서’ 등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