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강력 태풍 ‘바비’는 26일 제주도와 전라도를 차례로 집어삼켰다. 풍속이 30m/s에 육박하는 거센 바람에 제주 서쪽 해안가로 대형 파도가 쉴 새 없이 몰아쳤다. 통제 조건을 충족하지 않아 차량 통행이 허용됐던 목포대교를 지나던 차량은 다리 위 돌풍으로 곡예 운전을 하기도 했다.
도심에서는 우산 쓴 사람들이 바람에 끌려다니듯 갈팡질팡했다. 양동이로 퍼붓는 듯한 폭우가 바람에 흩날려 뿌연 안개처럼 앞길을 가렸다. 우산은 자꾸만 뒤집혀 무용지물이었다. 도로 중앙분리대의 밑동이 뽑혀 쓰러졌고, 대형 입간판이 넘어지면서 차량 추돌 사고가 나기도 했다.
주택가에서는 유리창이 깨져 산산조각나는 일이 잇따랐다. 주택 지붕과 아파트 외벽이 강풍에 뜯어져 날아간 곳도 있었다. 가로수와 신호등이 힘없이 꺾여 차로를 덮쳤다. 땅 꺼짐 현상(싱크홀)이 나타나고, 도로 곳곳의 하수구가 역류했다.
제주와 다른 지역을 잇는 하늘길과 바닷길은 대부분 끊겼다. 한라산 등산도 전면 통제됐다. 비닐하우스와 유리온실, 바다 양식장의 햇빛 차단막들은 곧 무너질 듯 펄럭였다.
바비가 서서히 북상하면서 전남도 거센 비바람에 휘둘렸다. 오후 8시30분 목포 서쪽 앞바다 160㎞ 해상을 지나면서 해안가에 세워둔 차들이 강풍에 기우뚱거렸다. 호남선과 전라선 일부 열차와 항공편 운행이 중단됐고, 무등산과 내장산 월출산 지리산 등 국립공원 입산이 통제됐다.
지난 집중호우 때 수해피해가 컸던 전북 역시 강풍에 시달렸다. 남원 수해마을 주민들은 복구가 덜 된 집에서 불안한 밤을 보냈다.
바비는 철제 시설물을 꺾고 운행 중인 자동차를 뒤집을 정도로 강력하다. 기상청 관계자는 26일 “이번 태풍의 특징은 많은 비가 아닌 강한 바람”이라며 “우리나라 서해상을 따라 북상하는 만큼 강한 바람에 의한 피해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1959년 이후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태풍 가운데 일 최대풍속이 가장 강했던 태풍은 초속 51.1m에 이르렀던 매미(2003년)였고, 차바(2016년)와 프라피룬(2000년)이 각각 초속 49.0m와 초속 47.4m로 뒤를 이었다. 바비의 예상 최대풍속은 초속 43~47m로 역대 4위권 이내의 태풍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전날 발령한 위기경보 ‘경계’ 및 중대본 2단계를 유지했다. 선별진료소 안전조치 408건, 집중호우 지역 재피해 방지를 위한 안전조치 8274건을 마쳤고 댐 하류 지역 홍수 예방을 위해 9개 다목적댐을 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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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환 황윤태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