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시드니 루멧은 책 ‘영화를 만든다는 것’(비즈앤비즈)에서 영화를 만드는 경험이 모자이크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영화를 구성하는 각각의 설정을 작은 타일이라고 치고 “여기저기서 최선을 다해 색을 칠하고 모양을 내고 광을 내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한데 붙이면서 원래 의도한 대로 나오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그가 스태프들과 가편집 영상을 보면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은 “잘 했어, 우리 모두 같은 영화를 만들고 있군”일 수밖에 없다.
‘영화하는 여자들’은 각자의 현장에서 모자이크의 한 조각을 책임지며 ‘한국 영화’라는 같은 영화를 만들어온 여성 영화인 20명의 목소리를 담은 인터뷰집이다. 한국 영화의 전환기인 1990년대 이후 제작, 연출, 연기, 촬영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시기별로 분위기는 다르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남성에 비해 소수였던 여성 영화인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한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가 서울극장에 입사했던 1987년 그는 ‘미스 심’으로 불렸다. 회사 임원이 헤드록을 걸고 면전에서 성희롱 발언을 했지만 문제 삼을 수 없었다. 영화사 여직원이라고 하면 비서나 회계·경리 담당이 전부이던 시절이었다. 2002년 제정주 아토 대표가 영화판에 뛰어들 때는 심 대표 같은 전임자들이 영화판에 낯설지 않았다. 영화 크랭크인을 할 때 ‘성희롱 예방을 위한 열 가지 생활수칙’을 돌아가며 읽을 정도로 현장은 진보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호적이지 못한 시선은 남아있다. 엄혜정 촬영감독은 “지금 CGK(한국영화촬영감독조합)에서도 키가 큰 편에 속해요. 176㎝거든요…남자 감독님들은 늘 ‘핸드 헬드(들고 찍기)는 가능하십니까? 생각보다 되게 마르셨는데요’ 같은 소리를 해요”라고 말한다. 남진아 조명·촬영감독도 “(영화과) 교수님들이 입을 모아 말씀하시는 게 뛰어난 애들 중에는 여자가 많다는 거예요. 그런데 후반이 문제인 거지. 결혼을 하면 여자들은 전업주부가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라고 분위기를 전한다.
1990년대부터 영화를 만든 임순례 감독의 다음 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1990년대 중반은 여성이 데뷔의 기회를 잡는 것 자체가 어려웠던 환경이라면, 지금은 데뷔의 문은 넓어진 반면 여성 영화의 서사와 장르가 투자와 배급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산업 자본적 환경에 대해 깊이 고민해봐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김현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