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진행됐던 기획재정부의 2019년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서 일부 기관의 최종 점수가 평가단 지침과 달리 평가위원의 동의 및 서명 없이 수정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기재부의 경영평가 지침에 따르면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평가위원들의 개별지표 평가·합산, 중간 보고서 제출, 2차 평정회의의 평가 점수 결정, 최종 보고서 작성, 평가위원 공동서명 순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이번 경영평가에선 지난 6월 초 평가위원이 평가를 완료한 공공기관의 개별지표 점수가 해당 평가위원도 모르는 상태에서 수정됐다는 게 평가위원의 주장이다.
2019년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 참여했던 평가위원 A씨는 26일 국민일보에 “5월 말~6월 초 평가단 내부회의를 거쳐 확정된 특정 공공기관의 개별지표 평가 점수가 최종 변경된 사실을 7월 말 기관 면담을 통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침은 평가위원이 기관의 점수를 결정하는 회의에 참석하고 최종 보고서도 작성해 제출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을 모두 건너뛴 것”이라며 “평가위원 본인 동의 없이 기재부와 일부 평가단이 점수를 바꾼 것”이라고 주장했다. A씨는 자신이 평가를 맡았던 기관의 개별지표 점수를 ‘C(보통)’로 평가했으나 최종 점수는 ‘D(미흡)’였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민간 평가위원들이 조직·인사·재무관리, 경영 전략 및 리더십 등 개별 경영 지표에 대한 점수를 매긴 뒤 이를 최종 합산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국민일보가 확보한 평가단 내부지침에 따르면 평가위원들은 5월 개별지표에 대해 각각 평가를 하고 중간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한다. 평가위원들은 이후 2차 평정회의에 참여해 평가 점수를 결정한 뒤 최종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평가단 간부들은 위원들의 평가 결과를 집계하고 보고서를 검수한다. 이후 평가위원들의 공동 서명을 받아 근거 기록을 작성해야 한다. 평가단 내부지침에는 평가단 간부의 주요 업무가 ‘평정 근거 기록 작성·제출(팀원 공동서명)’로 명시돼 있다. 평가위원들의 최종 동의를 거쳐 해당 점수가 결정된다는 의미다.
A씨는 평가단 간부들이 5월부터 자신에게 기관들의 개별지표 점수를 수정할 것을 여러 차례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당시 “근거가 무엇이냐”고 반발했다고 한다. A씨는 “나는 최종 보고서를 보지도 못했고 평정 근거 기록에도 서명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가단 간부들이 과도하게 점수 수정 지시를 내린데 이어 평가위원 동의도 없이 무단으로 점수에 손을 댔다면 평가의 공정성을 심대하게 침해한 것”이라고 했다. 평가단 내부지침에는 ‘기관 평가는 평가위원의 독립적 고유 권한’으로 규정돼 있다.
이 같은 방식으로 이뤄지는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에 따라 120여개 공공기관의 성과급, 기관장의 인사가 좌지우지된다. 전체 공공기관 직원은 지난해 기준으로 38만5534명이다.
과거 경영평가에 참여했던 국립대 교수 C씨도 “예전에도 평가위원 동의 없이 점수를 수정하는 일이 있었다”며 “그래도 나중에 평가단 간부가 ‘점수 수정을 했는데, 사전에 말하지 못해 미안하다’ 정도의 얘기는 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평가위원이 최종 점수를 알지 못하고 규정과 달리 점수 수정에 대한 사전 동의도 받지 못한다면 도대체 평가위원이 왜 있어야 하느냐”며 “평가위원 자신도 모르는 결과를 평가를 받은 기관에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A씨의 이런 주장에 대해 경영평가단 간부 B씨는 “최종 점수를 조정하는 2차 평정회의는 원래 평가단장과 간사, 팀장 등 평가단 간부, 기재부 관계자들만 참여하는 것”이라며 “이때 평가위원은 참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재부 관계자도 “평가위원들은 평가단 간부 회의에서 논의되고 결정되는 사안들을 모두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오해가 있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평가단 측과 기재부의 이런 설명은 기재부의 평가단 내부지침과 상반된다. 내부지침에는 평가위원의 주요 업무를 ‘2차 평정회의 참석, 최종 보고서 작성·제출’로 명시하고 있다. 평가위원이 자신이 맡은 공공기관의 특정 지표에 대한 최종 점수 산정 과정에 참여하고 동의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A씨 주장대로라면 소수의 평가단 간부와 기재부 관계자들이 참여한 소규모 회의에서 최종 평가 점수가 사실상 결정됐다는 얘기다. 이 회의에서 어떤 방식으로 점수가 변경됐는지 이 지표를 평가한 A씨는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영평가단 간부 B씨는 A씨 주장에 대해 “평가 점수를 평가위원 본인이 모를 수는 없다. 당연히 동의를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재부는 이와 관련해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전문·공정성을 위해 매년 각계 전문가로 경영평가단을 구성해 독립적으로 수행한다. 기재부는 평가에 부당하게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단계별 논의 과정에서 개별 평가위원 평가를 기초로 유형·평가팀별로 등급 불균형을 일관성 있게 조율하거나 각 부처의 정책 점검 결과를 추가 반영해 평가 결과가 결정된다”며 “특정 평가위원 또는 외부 기관의 영향력이 일방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기재부는 다만 “올해는 코로나19 영향으로 국민권익위원회의 ‘공공기관 채용실태 조사’가 지연돼 경영평가 결과 발표 직전에 조사 결과를 경영평가에 반영했다”고 해명했다. A씨는 이에 대해 “권익위 조사는 내가 맡았던 기관의 점수 변경에 영향을 주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 공정성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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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성 박재현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