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고난이 닥칠 때 그 고통을 낭비하시겠습니까

입력 2020-08-28 00:05
게티이미지

김만중의 ‘사씨남정기’나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작가가 유배 중 쓴 작품이다. 러시아 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도 ‘죄와 벌’을 시베리아 유배 생활 중 썼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유배 기간에 탄생한 걸작이 많아 ‘유배 문학’ 장르까지 생겼다. 유폐된 생활 가운데 깊은 사색이 가능해서일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전 세계인이 반강제적 고립을 경험한 지 반년이 넘었다. 훗날 이 기간의 사색을 담아낸 ‘코로나19 문학’ 장르가 생길지도 모른다.


한홍 새로운교회 목사의 신작 ‘폭풍 속의 은혜’(규장)는 ‘코로나19 문학’ 장르에 들어갈 법한 책이다. 책은 지난 2월 저자가 코로나19로 주일예배를 온라인으로 전환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저자가 목회하는 새로운교회는 건물이 따로 없었는데, 예배 장소로 빌려 쓰는 건물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방역으로 이틀간 건물이 폐쇄된다는 소식을 접한 건 토요일 오후 10시 30분이었다. 당장 예배 공간이 사라진 상황에서 저자는 번민한다.

‘한국교회가 한국전쟁 이후로 예배당 문을 닫은 적이 있던가’란 생각이 스쳤지만 이내 마음을 바꾼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불가항력적인 상황 속에서는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무엇보다 교회는 세상에 빛과 소금이 돼야 하고, 교회의 결정이 하나의 메시지가 돼 세상에 전달될 것’도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 그날 밤, 저자는 ‘금주 주일예배는 영상예배와 가정예배로 대체하며 교회 내 모든 모임도 중단한다’는 글을 전 교인에게 문자로 전달했다. 저자는 이날을 “잠자리에 들어도 잠이 오지 않았던 밤”으로 기록했다.

주일예배를 온라인으로 대체한 다음 날, 저자는 예배 녹화를 마친 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성도를 마주하지 못하고 카메라에 설교하는 현실에 가슴이 미어졌다.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예배를 드린 모든 목회자의 심정이 비슷했을 것이다. 당시 교회는 신년 40일 특별새벽기도회(특새) 중이었다. 35일을 넘겨 닷새 치의 영상 설교만 준비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충격파로 불안해할 성도를 생각하니 예년처럼 마무리할 순 없었다. 결국 ‘특새 플러스’란 제목으로 기간을 연장했는데, 평소보다 2배 더 긴 83일간 진행했다. 책은 특새 때 저자가 설교한 내용에 평소 고난 겪는 이들을 위해 써둔 위로의 글을 보탠 것이다.

저자의 염려대로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성도들이 교회에 적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식당이 어려워져 가게를 내놓은 성도와 일감이 끊긴 프리랜서 청년, 유학길이 막히거나 2차 면접을 통과하고도 채용이 무산된 청년들…. 그래선지 책에는 코로나19 원인을 기독교적 시각으로 분석하기보단 성도의 아픔을 보듬고 격려하는 내용이 더 많다. 설교 중 “이 기나긴 터널의 끝이 언제 보일지 장담할 수 없어 저 역시 아직 불안하고 힘들다”고 솔직히 고백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히 말한다.

“하나님이 허락하는 모든 고난에는 특별한 ‘영적 레슨’이 있다. 이 영적 레슨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고난이 끝나버린다면, 그것은 고통을 낭비하는 일이다.… 고난의 때를 잘 이겨낸 사람은 미래의 고난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고난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만큼, 지금 이 순간을 영적으로 깊어지는 시간으로 활용하자는 뜻이다. 구체적인 지침도 제시한다. 묵상에 힘쓰고 자기 일에 집중할 것,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할 것 등이다. 무엇보다 ‘고난 중 하나님이 동행하니 두려워 말 것’을 강조한다. “예수를 믿고 폭풍의 파도 위로 뛰어든 베드로처럼,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며 담대히 나가라”고 한다. 다소 원론적이지만, 결론은 ‘코로나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자’는 것이다.

맺음말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교회의 역할이 상세히 담겼다.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각자 다른 만큼, 저자의 모든 제안에 공감하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말은 누구에게나 깊은 위로를 전할 것이다.

“어떤 폭풍 속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며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 은혜는 폭풍을 견디게 할 뿐 아니라, 폭풍으로 더 강하고 아름다운 믿음을 갖게 할 것입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