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 왜 걸렀을까, 조양래 회장 차남 후계자 선택 이유

입력 2020-08-27 00:12

한국테크놀로지그룹(한국타이어) 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본격 점화되면서 조양래 그룹 회장이 장남 대신 차남을 후계자로 선택한 배경에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재계와 업계에선 차남 조현범(사진) 사장이 미래 비전과 트렌드에 맞는 사업 방향을 제시해 한수 위의 경영능력을 보여준 영향이 크다고 보고 있다.

그간 한국타이어는 ‘형제 경영’으로 주목받아 왔다. 장남 조현식 부회장은 지주사인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대표이사를 맡아 한국타이어를 포함한 계열사 간 소통 확대 등에 집중했다. 차남 조 사장은 한국타이어 사장과 그룹 최고운영책임자로 일하며 신사업 추진, 대규모 투자, 인수·합병(M&A) 등 업무를 총괄했다.

다만 재계에 따르면 미래 발전 방향 등을 적극적으로 제시했던 조 사장이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후계자로 낙점됐다는 후문이다. 26일 재계 한 관계자는 “조 사장은 기업브랜드 강화, 기업문화 개선 등 혁신에 집중하며 변화에 능동적인 대처를 해 왔다”며 “조 회장도 이런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크게 공감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지난달 입장문을 통해 후계자 낙점 배경을 간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조 회장은 “주식 매각건과 관련해서는 조 사장에게 약 15년간 실질적으로 경영을 맡겨 왔었고, 그동안 좋은 성과를 만들어 회사 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조 사장은 1999년부터 사용한 ‘한국타이어’의 사명을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로 교체했다. 타이어를 넘어 ‘테크 기업’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또 미래 시장 선도를 위한 연구·개발(R&D)과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한국타이어는 2018년 전기차 전용 타이어를 출시했고, 최근 포르쉐 등 글로벌 업체와 신차 공급 계약을 맺으며 틈새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반면 조 부회장은 경영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긴 게 승계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는 2010년 타이어 재활용기업 아노텐금산을 세웠지만 잇단 사재 출연에도 자본잠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타이어 재활용 사업은 정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강화된 데다 업황마저 악화되면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조 회장이 차남에게 지분을 몰아준 것은 형제간 경영권 다툼을 미연에 막으려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조 회장은 “가족 간 최대주주 지위를 두고 벌이는 여러 움직임에 대해 더 이상의 혼란을 막고자 미리 생각해뒀던 대로 조 사장에게 주식 전량을 매각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