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자를 성적 대상으로 여긴 방송기자

입력 2020-08-27 04:03

지상파 방송기자가 제보자를 성추행해 유죄판결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피해자는 기자가 소속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 소송에 증인으로 출석해 자신의 피해를 증언해야 했는데, 법원은 이를 피해자에게 가해진 ‘2차 피해’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6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서부지법 형사6단독 신진화 판사는 지난 4월 제보자에게 접근해 성추행 등을 한 혐의(강제추행)로 전직 방송기자 송모(38)씨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또 80시간의 성폭력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에 1년간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송씨는 2014년 2~3월쯤 자신이 소속돼 있던 한 시사프로그램에 연예인 관련 제보를 해온 피해자 A씨를 만나게 됐다. 초반에는 제보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지만 연락을 지속하면서 점차 제보와는 관계없는 사적인 대화까지 나누게 됐다고 한다. 송씨는 문자메시지와 전화통화로 A씨에게 성적 관계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제보를 받은 지 1년5개월이 지난 2015년 7월 서울 서대문구의 한 호텔에서 A씨를 성추행했다.

이후 A씨는 2017년 5월쯤 해당 방송국에 성추행 사실을 신고했다. 방송국은 특별감사팀을 꾸려 9개월 동안 송씨를 조사한 뒤 2018년 2월쯤 송씨에 대한 징계 의견을 냈다. 감사를 통해 송씨가 이전에도 다른 언론사 지망생에게 접근해 성추행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기도 했다. 방송국은 한 달 뒤 송씨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이런 사실은 송씨가 방송국을 상대로 해고무효 소송을 제기하며 알려졌다. 그는 해고무효 소송에서 “제보와 관계없이 서로 합의 하에 호텔에 가게 됐지만 A씨가 거부해 신체접촉을 중단한 것”이라며 “우매한 행동에 해당할 뿐 성추행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1심과 2심 모두 송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사재판 이후 A씨는 송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추가 고소했다.

신 판사는 “피해자가 민사소송 증인으로 출석해 당시를 회상하며 추궁을 받는 2차 피해를 보아 뒤늦게 고소에 이르렀다”며 “송씨가 우월적 지위에서 남성으로서의 호감 표시와 의사소통 방식을 편의적으로 해석했고 상당 기간 이를 범죄로 인식조차 못 한 채 일련의 상황에 대처하면서 상대방과 자신에 대한 피해를 키워 온 도의적·법률적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다만 “송씨 역시 10년 넘게 재직하던 방송사를 그만뒀고 행동의 책임을 처절히 반성하고 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