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골목 장악한 오토바이

입력 2020-08-29 04:02 수정 2020-08-29 04:02

어휴, 벌써 8개월째다. 군대처럼 종료 시점을 예상할 수 있는 고난이라면 그나마 괜찮았을 텐데 이제 좀 회복되나 싶으면 또 터지고, 이제 좀 나아지나 싶으면 다시 터지고 하다 보니 더 지치고 괴롭다. 살다보면 내 잘못도 아닌데 외부 요인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궁지에 몰릴 때가 있다. 자영업자들은 조류독감이나 돼지열병이 터졌을 때 그랬다. 한 자영업자는 “전염병이 터졌다는 기사가 떴을까봐 아침에 일어나는 게 두렵다”고 했다.

지난 1월 우려가 현실이 됐다. 코로나19 앞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자영업자들은 ‘그래, 견디다 보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하며 버텼다. 지난 5월 확진자 수가 한 자릿수로 떨어지자 정부는 ‘생활 속 거리두기’로 단계를 낮췄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고난이 끝나는 건가, 기대에 부풀어 있을 때 이태원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견딤의 시간은 계속됐다. 시간은 흘렀고 다시 긴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에야말로 괜찮아지는 건가, 생각할 때쯤 광화문발 2차 대유행 위기가 시작됐다. 42.195㎞를 열심히 뛰어 겨우 결승점을 코앞에 뒀는데 처음부터 다시 뛰어야 하는 것 같은 허탈감. 자영업자들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무너질지 모른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난보다 더 무서운 건, 끝이 닿을 듯 말 듯한 고난이다. 괜찮아질 거라는 희망이 꺾였을 때의 상처는 치명적이다. 지금부턴 서울 서교동의 한 골목 상인들이 입은 치명상에 대한 이야기다.

골목은 평화로웠다. 코로나19가 터졌을 때 상인들은 마주칠 적마다 서로를 위로했다. 버티자, 조금만 견디면 괜찮아질 거야. 자기 가게 사정도 안 좋으면서 옆 가게 매출 올려주겠다고 상인들은 이 골목 가게만 이용했다. 3개월을 견디자 조금씩 매출이 회복세를 보였다. 그러다 클럽에 간 확진자가 직업과 동선을 속이는 바람에 코로나19는 재확산됐다. 상인들은 예민해졌다. 의형제처럼 지내던 상인 둘이 매장에서 심하게 다퉈 경찰이 출동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견디다 못한 상인들은 배달에 눈을 돌렸다. 가게 간판은 하나지만 배달 앱엔 여러 개의 이름으로 등록한 뒤 장사를 시작했다. 좁은 골목이 온통 오토바이로 채워지면서 그나마 몇 안 되던 손님들의 발길마저 끊겼다.

악순환의 시작. 배달 가게가 많으면 골목을 살릴 수 없다고 주장하던 상인도 속절없이 배달을 시작했다. 한 상인은 블로그 광고 업체에 뒤통수를 맞았다. 광고 업체는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자영업자에게 접근해 광고의 힘으로 매출을 회복하라고 꼬드겼다. 상인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광고 회사에 130여만원을 입금했지만 석 달이 지나도록 업체는 아무것도 한 게 없고, 매출 상승을 약속했던 담당자는 연락이 두절됐다. 검색해보니 해당 업체로부터 피해를 봤다는 글이 꽤 있었고 그제야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상인은 “매출이 안 올랐다는 사실보다도 시국을 이용해 초조해하는 자영업자를 두 번 죽이는 업체가 있다는 게 더 분하고 원망스럽다”고 토로했다.

이제 괜찮아지나 하면 이태원에서 터지고, 이제 괜찮아지나 하면 광화문에서 터지면서 자영업자들의 속도 터져 버렸다. 팔 벌려 뛰기를 하는데 속없는 누군가가 마지막 숫자를 외쳐 모두가 처음부터 다시 뛰어야 하는 상황. 그런데 마지막 숫자를 외친 사람은 “내가 뭘 잘못했냐”며 오히려 정부를 고소한단다. 더 이상의 민폐를 막기 위해 명단을 제출하라고 하니 “핍박하지 말라”며 허위 명단을 제출했다. 이젠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혼성그룹 거북이는 항상 희망적인 노래를 부른 것으로 유명하다. 반복되는 코로나19 때문에 지쳐 있다면 거북이의 노래 ‘왜이래’를 들어보자. 리더 터틀맨 고(故) 임성훈은 “갑자기 왜이래/ 난데없이 왜이래”라며 랩을 시작한다. 이어 나오는 가사는 “이제까지 잘 참아왔어요/ 세상살이 그리 쉽지 않아요. (중략) 가슴을 활짝 펴고 크게 웃어요./ 하늘 향해 힘껏 소리쳐 봐요/ 답답한 가슴이 확 풀어지도록/ 숨 막힌 세상 시원하도록.”

갑자기 난데없이 찾아온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고통스럽지만 이제까지 우린 잘 참아왔다. 마스크로 입과 코를 막은 채 숨 막힌 세상을 살고 있지만 조만간 가슴 활짝 펴고 크게 웃을 수 있는 그날은 반드시 올 거다. 이 고난이 끝날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조금만, 조금만 더 견뎌내자.

이용상 뉴미디어팀장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