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부터 전국의 전공의들이 무기한 집단휴진에 돌입했다. 문제의 발단은 향후 10년간 의대 정원을 4000명 늘리고 늘어난 인원 중 3000명을 지역 의사로 복무토록 하겠다는 정부 계획 발표였다.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 간 의료 서비스 격차를 줄이겠다는 정부 주장과 그것이 문제의 근본 해결이 아닌 포퓰리즘 발상으로 의료 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가져올 것이라는 의료계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한전공의협의회 대표와 총리의 대화를 통해 전공의들이 코로나19 관련 진료에는 참여하기로 하는 등 타협의 노력이 있었지만 대통령의 강경 발언 이후 행정명령 발동으로 대결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미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의대 선발을 둘러싸고 공정성 논란도 벌어지고 있다. 정부 입장이 포퓰리즘인지 아니면 의료계 반발이 집단이기주의인지는 모르겠으나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문제는 당장 눈앞에 닥친 긴급한 상황이다. 서로 비타협적으로 대결만을 고집한다면 코로나19로 인한 사회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더 큰 혼란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응급의료까지 손을 놓은 전공의들의 과한 대응도 아쉽지만, 문제 발생 과정과 정부 대응을 보면 그간 전문가들을 바라보고 대하는 특정 시각이 집중적으로 드러난 것 같아 안타깝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전문가들은 그 필요성과 중요성이 높아진다. 의료, 법률, 교육, 문화예술 등 여러 분야에서 전문가들은 이론 교육과 현장 훈련을 통해 얻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명예와 권위, 경제적 보상을 누린다. 전문가들이 누리는 높은 지위와 보상을 능력과 노력, 그리고 헌신의 결과로 볼 것인지 아니면 기회의 집단적 독점과 기득권 수호의 산물로 볼 것인지에 따라 그들은 사회적 선망과 존경의 대상이 될 수도, 날카로운 비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의약 분업, 로스쿨과 의학전문대학원 도입 등을 거치면서 전문가에 대한 이런 상반된 관점은 계속 평행선을 그리며 대치해 왔다. 최근 법원 판결과 검찰 수사를 둘러싼 논란의 바탕에도 법률 전문가를 정의의 수호자 대 기득권의 수호자로 보는 관점의 대립이 깔려 있다. 전문가를 기득권의 수호자로 보는 시각은 주로 민주화에 앞장선 시민운동에서 지배적이다. 그런데 의료 분야이건 법률 분야이건 현실은 대립하는 두 관점이 섞인 중간쯤에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어느 한 관점만을 지나치게 고집하면 문제 해결이 어려울 뿐 아니라 오히려 문제가 악화될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각 분야 전문가들이 능력과 노력을 통해 현재 위치에 왔으며, 이들이 사회발전에 기여하고 소중한 시민들의 가치를 지킨다는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전문가들이 누리는 지위와 혜택도 그에 따른 보상으로 정당화됐다. 이러한 전문가들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그간 곳곳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편에서는 전문가들이 시민의 가치에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사사로운 이익을 챙길 뿐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인터넷 검색이 보편화되면서 전문가들이 불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타났다. 전문가 수가 늘면서 경쟁도 심해졌다. 그 결과 자신들의 지위도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전문가들의 지위와 권위가 예전만 못하다고 해서, 그들이 자신들의 집단적 이익에 연연한다고 해서 전문가들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역할과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들을 지난 시대의 부패한 집권세력 혹은 그와 결탁한 적폐로 몰아 정책 형성 과정에서 전적으로 배제해도 안 된다. 전문가들의 집단적 이익을 충분히 알면서도 그들의 전문적 지식을 이용할 줄 알아야 정책이 성공할 수 있다. 과거 전문가들이 차지하던 자리를 시민운동가들로 채우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순진한 오산이다. 자신이 확신하는 도덕적 우월감이 전문적 지식이나 식견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과거 역사에서 반복됐던 오류를 피할 수 없다.
지금 정부는 정책의 결과에만 치중하지 않고 정책 형성과 실행 과정에서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집권 초 원전정책 결정을 위해 국민과 함께 그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숙의를 시도했던 정부가 왜 이번 의료정책 결정에서는 전문가들에게 같은 태도를 갖지 못하는지 의문이다.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