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K의 공포

입력 2020-08-27 04:02

알파벳 K.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한국 방역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드날렸다고 해서 이 글자가 붙은 신조어 ‘K방역’이 인기를 끌었다. K팝 등에서 시작한 한류가 방역 부문에서도 진가를 드러냈다는 우리 정부의 자화자찬도 이어졌다. 그런데 요즘 국내 코로나 확산세가 2차 대유행 수준으로 커지고 있어 K방역 간판을 내려야 한다는 비아냥도 들린다.

오히려 알파벳 K는 경제 전문가들이 최근 부쩍 많이 사용하는 글자로 부상하면서 흥미를 끈다. 경기 사이클 유형을 예측하는 지표로 동원되던 V U L W 등은 이제 뒤로 밀려나 있다. 단순히 급반등(V), 장기침체(L, U), 이중침체(W) 등 경기회복 여부만을 판단하는 2차원적 구분법만으로는 코로나가 야기한 복잡한 경기상황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비해 K자형 사이클은 경기회복 여부에다 양극화라는 변수를 추가한 3차원 개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 극복 이후에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담고 있는 셈이다.

우려는 벌써 현실화하고 있다. 실물경제를 6개월 이상 앞선다는 주식시장에서 이미 암울한 양극화의 미래를 보는 느낌이다. 최근 미국 뉴욕 증시의 S&P500 지수는 지난 3월 대폭락 때 까먹은 지수를 모두 회복하더니 지난 2월의 최고치마저 뛰어넘었다. 지수로만 놓고 보면 V자 반등이지만 코로나19 수혜주로 꼽히는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등 5개 대형주 위주의 상승 랠리가 낳은 결과다. 반면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S&P500 편입 종목의 20%는 주가가 올 최고치의 50% 아래로 내려간 뒤 회복되지 않고 있다. 코로나 수혜주인 기술주 바이오주 등 성장주는 저점 이후 11% 상승한 반면 이른바 가치주는 13%나 떨어졌다. 한국 주식시장 상황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코로나발 양극화가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는 차원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봉쇄 조치로 잠시 직장을 떠난 사람들이 로봇, 드론 등에 밀려 일터로 복귀할 가능성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들은 로봇 등이 업무를 대체하기 쉬운 저임금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최근 경기회복 조짐을 보이는 유럽에서 오히려 실업자가 느는 현상은 심상찮은 징조로 보인다.

물론 4차산업 활성화가 근로자의 생산성 향상, 전체 국내총생산(GDP)과 국민소득 확대로 이어지는 효과가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근로자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코로나를 핑계로 근로자들을 길거리로 마구 내쫓는 건 아닌지 우려스러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각국이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내놓고 있는 비대면 활성화, 4차산업 정책이 일자리 보호보다는 오히려 기업 지원 위주로 짜인 것은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가 내년 시행을 목표로 발표한 세제개편안 가운데 투자세액공제 제도는 로봇 등 자동화 시설 투자 시 법인세를 감면해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기업 입장에선 자동화 설비 확충에 따른 법인세 감면에다 해고를 통한 임금 비용까지 줄이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는 셈이다. 반면 2025년까지 19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한국판 뉴딜정책에 자동화 설비 투자로 인해 쫓겨나는 인력에 대한 적극적 대책이 담겨 있는지는 의문이다. 소극적 고용유지 지원 정책만으로 자동화로 인한 실업 증가속도를 감당할 수 있는지도 점검할 때가 됐다. 자동화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으로 얻는 기업 이득을 분배하는 방안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2차 재난지원금 선별지급이냐 아니냐는 정치적 명분 싸움은 접어두고 코로나가 재촉하고 있는 사회구조 재편 방안 마련을 서둘러야 할 때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