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하 조세재정연)이 정부의 올해 세법 개정안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는 보고서를 냈다. 정부가 소득세 최고세율 과세표준 구간(10억원 초과)을 신설한 것과 관련해 “공론화 과정이 부족했다”고 평가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과도한 세제 혜택으로 경제 전체의 생산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를 담았다. 보고서는 공교롭게도 정부가 국무회의를 열고 세법 개정안을 의결, 확정한 날에 발표됐다.
강동익 조세재정연 부연구위원은 25일 발간된 ‘재정포럼 8월호’에 실린 글에서 정부가 올해 세법 개정안에서 소득세 최고세율 과표 구간을 신설한 것과 관련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평가했다. 그는 고소득자의 한계세율(소득이 높아짐에 따라 증가하는 세율)을 3% 포인트 올리면 과세 대상 소득이 1.5~9%까지 감소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경제 전체의 생산량이 감소해 세수 역시 소득 감소분만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요국보다 다단계로 나눠 누진세율을 적용하는 한국 소득세제의 특성상 소득이 올라갈수록 세금이 급등해 소득 증가 유인이 줄고 경제활동 위축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가 조세 부담의 주체를 바꾸려는 과정에서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 없었다는 점도 지적했다. 강 연구위원은 증권거래세 인하, 부가가치세 간이과세 기준 변경과 종합부동산세·소득세 세율 인상을 언급하며 “금융시장 참여자에게서 부동산 투자자에게로, 법인과 자영업자에게서 고소득 개인에게로 세 부담이 전가됐는데 이런 전가가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통해 이뤄진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강 연구위원은 또 특허조사분석 비용 공제 인정, 중소기업 특별세액감면 및 상생결제 제도 연장 등 중소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이 과도한 점도 지적했다. 그는 “과도한 혜택은 비생산적인 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당하지 않음으로써 생산적 기업이 시장에 진입해 성장할 기회를 잃게 할 수 있다”며 “단순히 기업 규모가 아니라 설립 연수 등 한시적 조건으로 혜택을 부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세법 개정안 의결 당일에 비판 보고서를 낸 것과 관련해 조세재정연은 “해마다 8월 말에 발간하는 재정 포럼에 세법 개정안에 대한 총평을 게재하는데 올해는 우연히 (발간일과 세법 개정안 의결일이) 겹쳤을 뿐”이라며 “강 연구위원의 글은 이미 지난달 말에 작성된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세법 개정안을 확정하고 소득세법 등 16개 법안을 다음 달 3일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