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평가위원 “‘부당한 것 알지만 점수 바꿔라’ 지시 있었다”

입력 2020-08-26 04:04

올해 진행된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 과정에서 부당하게 평가 점수를 조정하라는 평가단 윗선의 요구가 있었다고 이 평가에 참여했던 평가위원이 폭로했다. 이 평가위원은 이 과정에 기획재정부가 개입한 의혹도 있다고 주장했다.

120곳이 넘는 공공기관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한다는 명목으로 기재부는 회계사 교수 변호사 등 민간 전문가로 매년 평가단을 꾸려 실적 평가를 하고 있다. 기재부는 그동안 개입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평가단 평가에 개입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밝혀 왔다. 그러나 공공기관 경영평가단 내부 인사가 평가단 윗선 및 정부의 개입 의혹을 제기하면서 경영평가의 공정성이 다시 논란이 될 전망이다.

올해 6월 종료된 기재부의 ‘2019년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 참여했던 평가위원 A씨는 25일 국민일보와 만나 “평가가 마무리되던 5월 중순 이후 평가단 간부들이 과도하게 평가 점수를 수정하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명확한 근거 없이 특정 기관의 점수를 크게 내리거나 올리라는 추가 요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A씨는 이 같은 요구가 다수의 기관을 대상으로 수차례 계속됐다고 말했다. A씨는 “지시를 전달한 평가단 간부도 ‘불합리하다는 것을 아는데 어쩔 수 없다’ ‘그런데도 조정해 달라면 해줘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평가단장, 간사, 팀장 등 공공기관 경영평가단 간부들은 평가위원들의 평가 보고서 검수·검증 권한이 있다. 그러나 이는 평가의 일관성과 오류 수정을 위한 것으로, 명확한 사유나 근거 없이 점수 수정을 지시하는 것은 경영평가 취지에 반한다. 경영평가단 내부지침에는 ‘기관 평가는 평가위원의 독립적 고유 권한’이라고 돼 있다.

A씨는 특히 평가 점수 수정 요구에 기재부 의중이 반영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평가단 간부들이 점수 수정 요구를 할 때 이는 평가단장 및 기재부 의중이라는 점을 언급했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공공기관 경영평가 편람에 공정성과 객관성을 평가의 핵심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1984년 제도 도입 이후 경영평가를 직접 하지 않고 외부에 맡겨 왔다. 대신 매년 경영평가 편람을 발간해 평가 기준과 방법을 제시한다.

A씨는 결국 평가 보고서를 하달된 등급에 맞춰 새로 써야 했다. 평가위원들은 최종 등급을 매기기 전 기관들의 개별 경영지표를 9개 등급(A+~E)으로 세부 평가한다. 지표들이 최종 합산돼 공공기관 종합 평가 결과는 S(탁월)~E(아주 미흡)까지 6개 등급으로 매겨진다.

A씨는 “내가 담당한 기관의 개별지표 점수를 갑자기 2단계 이상 바꾸라니 당황스러웠다”며 “‘이 기관은 문제가 없다’고 했는데도 ‘문제 없다는 걸 아는데 일단 바꿔보라’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경영평가에 참여했던 국립대 교수 B씨도 “평가 점수와 관련해 기재부에 항의했는데 기재부 측에서 ‘다른 쪽 점수를 올려 보전해주겠다’고 했다”며 “이는 기재부 의중이 평가에 반영된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과거에 경영평가위원으로 일했던 다른 국립대 교수 C씨 역시 “당시 평가단 간부로부터 특정 기관에 대한 점수 수정 요구를 받은 적이 있다”며 “말을 안 들으니 정부 쪽에서 ‘점수가 왜 수정이 안 됐느냐’는 연락이 왔다”고 했다.

기재부는 A씨의 의혹 제기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기재부 관계자는 “기재부는 평가 과정을 모니터링만 할 뿐 점수를 내는 것은 평가단”이라며 “점수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는 일이 있다면 이는 큰일 날 일”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평가단이 점수를 정하는 평정회의에 기재부는 참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영평가단 간부 D씨는 “기재부로부터 무슨 기관을 잘해라 빼라 요청받은 게 하나도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영평가에 참여했던 또다른 인사는 “기재부와 평가단이 마지막으로 최종 평정을 했다”며 “기재부 사무관 등과 함께 점수를 논의하는 평정회의가 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 공정성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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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성 박재현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