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테크놀로지그룹(한국타이어)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이 본격적으로 막이 올랐다.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장남 조현식 부회장이 누나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의 편에 서겠다는 입장을 공식 발표하면서다. 부친의 지분 전량 매각에 따라 최대주주가 된 차남 조현범 사장과 2대 1로 맞붙는 ‘남매의 난’ 구도가 그려진 것이다.
조 부회장은 25일 법무법인 원을 통해 “현재 진행 중인 성년후견심판 절차에 가족의 일원으로서 참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아버지의 건강상태에 대한 논란은 회장 본인뿐만 아니라 그룹, 주주 및 임직원 등의 이익을 위해서도 법적인 절차 내에서 전문가 의견에 따라 객관적이고 명확한 판단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이번 분쟁은 조 이사장이 지난달 30일 서울가정법원에 성년후견심판을 청구하면서 불을 붙였다. 조 사장에 대한 조 회장의 승계 결정이 본인의 자발적 의사에 따라 이뤄졌는지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였다. 이때만 해도 별다른 의사를 밝히지 않았던 조 부회장은 이번 발표와 함께 부친의 승계 결정에 공식 제동을 걸게 됐다.
조 회장은 지난 6월 시간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자신의 지분 23.59%를 모두 조 사장에게 매각했다. 이로써 지분 42.9%를 보유한 조 사장은 그룹 내 최대주주로 올라서며 승계 구도를 굳혔다.
조 회장은 지난달 조 이사장이 성년후견심판을 청구하자 직접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저의 첫째 딸이 왜 이러는지 정말 모르겠다”며 “충분한 검증을 거쳤다고 판단하여 이미 전부터 (조현범 사장을) 최대주주로 점찍어 뒀다”고 밝혔다. 조 회장은 골프와 걷기 운동을 언급하며 자신이 건강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일단 재계에선 성년후견심판을 통해 조 회장의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이번 분쟁의 핵심이라고 보고 있다. 조 부회장(지분율 9.32%)과 조 이사장(0.83%), 차녀 조희원씨(10.82%)가 힘을 합쳐도 조 사장의 지분율(42.9%)을 넘기 어려워 지분 싸움으로는 경영권을 흔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년후견제도는 질병, 장애, 노령 등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지속해서 결여된 성인에게 후견인을 지정해주는 제도다. 비슷한 사례로 롯데그룹의 형제간 분쟁이 있다. 법원은 차남 신동빈 현 롯데그룹 회장과 장남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의 갈등이 지속되던 2016년 고 신격호 명예회장이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한정후견 개시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박구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