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고가를 갈아치우며 고공행진을 벌이던 국제 금값의 상승세가 주춤하고 있다. 이달 7일(현지시간) 사상 처음으로 온스당 2000달러를 넘어섰던 국제 금값은 12일 1870달러까지 떨어졌다. 이후 다시 2000달러 선에 진입했다가 재차 고꾸라지며 24일 기준 1940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안전자산’으로 떠오른 금의 위세가 고점 돌파 이후 지지부진한 것이다.
금은 최근 ‘투자 현인’들이 대거 매입에 나서며 시장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특히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올 2분기에 세계 2위 금광업체 배릭골드의 지분 1.2%(약 6700억원)를 사들이면서 금 투자자들의 기대감을 키웠다. 버핏 회장은 그동안 “금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며 금 투자에 부정적 시각을 보여 왔다. 그런 버핏 회장마저 금 투자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금값의 추가 상승 전망에 힘이 실렸다. 하지만 고점 돌파 후 가격 상승세가 되레 주춤하자 최근 금을 사들인 투자자들 사이에선 “뒤늦게 상투를 잡은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는 형국이다.
금값이 흔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금융투자업계는 ‘실질금리’가 계속해서 내려갈 것이란 기대감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꼽는다. 실질금리는 물가 상승률이 반영된 이자율을 뜻하는데, 통상 금 가격과 거꾸로 움직여 왔다. 올 들어 미국 5년물 국채의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에 진입하자 금값은 본격적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은행에 돈을 맡겨도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오히려 손해라는 생각에 금을 사 두는 사람들이 늘어난 탓이다. 조병헌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금과 실질금리가 매우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이는 상황에서 향후 실질금리가 더 떨어지기 어렵다는 인식이 퍼지며 금값 상승세가 주춤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나치게 많은 투자 자금이 쏠린 점도 위험 요소로 꼽힌다. 세계금협회(WGC)에 따르면 올해 금 상장지수펀드(ETF)에 유입된 자금은 500억 달러(약 59조원)에 달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가운데 투기적 자금이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최근 금값이 이유 없이 급락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연구원은 “금에 대한 투기적 매도세가 점차 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코로나 사태 속에 금값 상승세는 쉽사리 꺾이지 않을 거란 관측도 여전하다. 조승빈 대신증권 연구원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완화적 통화 정책을 고려하면 실질금리 상승은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며 “중장기적으로 금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