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예술 뉴딜’ 770억 편성해놓고… 집행은 ‘0’

입력 2020-08-25 04:05

정부가 3차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 당시 전국 주요 공공시설에 벽화를 그리고 예술품을 설치하는 ‘예술 뉴딜’ 사업을 770억원이나 편성했지만 정작 편성 두 달이 다 되도록 단 한 푼도 집행되지 않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공모 접수와 지자체의 사업계획서 검토 등의 일정을 고려하면 사실상 연내 예산 집행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해 4차 추경 편성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정작 앞서 편성해둔 예산부터 제대로 집행이 안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여당이 3차 추경을 편성하면서 연내 집행조차 불가능한 사업을 70배 규모로 키우는 바람에 수해 복구와 코로나19 위기 극복 등 필요한 곳에 쓸 실탄 부족을 야기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미래통합당 배현진 의원이 24일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올해 편성한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업 770억원 가운데 현재까지 집행액은 ‘제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업은 지역 유동인구가 많은 공공장소에 벽화나 조각 등 예술작품을 설치해 도시 경관을 개선하는 동시에 예술인들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취지로 2009년부터 매년 추진됐다.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로 예술인 등의 일자리가 감소할 것을 우려, 올해 본예산에 11억7600만원 편성된 이 사업을 3차 추경에서 758억6000만원 증액해 총 770억3600만원 편성했다.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보통 시·군·구 등 기초 지자체로부터 해당 지역에 필요한 공공미술 수요를 받고 공모를 통해 사업자를 선정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투입되는 예산도 중앙정부가 지급하는 국비와 지자체가 부담하는 지방비를 5대 5로 편성해 왔다. 지자체별 재정 여력이 다르다 보니 해마다 실제 이 사업에 공모해 참여한 지자체는 한 해에 10곳 안팎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올해 3차 추경 편성 과정에서 이 사업을 돌연 ‘예술 뉴딜 프로젝트’로 명명하면서 전국 228개 기초 지자체 전체에 1개씩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며 사업 규모를 대폭 늘렸다. 코로나19로 생계 위협을 받는 예술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예술인 8500명을 지원한다는 명목에서다. 예산 부담 비율도 국비 8대 지방비 2로 조정해 각 지자체에 국비를 선(先)지급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국회예산정책처는 추경안 발표 직후 낸 심사 보고서에서 “정부가 지자체에 사전 수요 조사나 의견 수렴도 없이 예산을 짰다”며 “사업 추진 의지가 부족하거나 지방비 확보가 어려운 지자체는 사업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 지적은 현실화할 조짐을 보인다. 문체부에 따르면 우선 228개 기초 지자체 대상 사업 공모 과정에 최소 2개월이 걸린다. 여기에 지자체로부터 접수된 사업계획서 수정에도 1~2개월이 걸린다. 사업 시행 대상 지자체가 228곳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기 때문에 이 기간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최종 계획을 확정하고 실제 작품 제작에 들어가는 시점은 올해를 넘길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시급성을 요건으로 하는 추경 편성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가능한 대목이다. 배 의원은 “3차 추경 당시 정부·여당이 코로나 문제의 시급성을 내세워 정작 연내 집행하기도 힘든 사업을 졸속 편성했다. 이로 인해 코로나19 2차 대유행 위기 대응에 필요한 예산 마련에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