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시행착오 반복은 실력이다

입력 2020-08-25 04:02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페이스북에 “오늘 국내 지역감염 환자 수가 4명으로 줄었다. 우리는 코로나를 이겨가고 있다”고 적었다. 이게 시작이었다. 이튿날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국민들에게 귀중한 휴식을 드리고자 한다”며 8월 1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다. 1주일 후인 27일에는 코로나19 이후 한국 경제에 대해 “(다른 국가들에 비하면) 기적 같은 선방의 결과”라고 말했다. 30일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7월 말부터 1800만명 대상으로 외식·숙박·영화 등 소비쿠폰을 집행, 1조원 수준의 소비 촉진을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국민은 ‘고통 끝, 행복 시작’을 암시하는 경제사령탑들의 확언에 솔깃했다.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렸다.

정부와 여당은 최근 코로나19의 전국 확산과 관련, 8·15 광화문 집회와 이를 주도한 전광훈 목사, 사랑제일교회 때리기에 여념이 없다. 방역 당국의 자제 요청에도 대규모 집회를 이끌며 대확산을 부채질한 책임은 작지 않다. 그렇다고 정부가 자신의 실책을 눙쳐도 되는 걸까.

질병관리본부 자료를 보면 지난 10일 34명이었던 코로나19 확진자가 11, 12일 각각 50명 선으로 늘어난 데 이어 13일 103명으로 본격 확산의 시작을 알렸다. 14일 166명, 15일 279명으로 확산세가 폭발했다. 이는 광화문 집회와 무관한 수치다. 즉 8월 대확산의 단초는 정부의 방역 실패에 기인한 셈이다. “정부가 외식 쿠폰을 뿌리겠다고 발표, 국민에게 방심해도 된다는 시그널을 줬다”는 김우주 고려대 교수의 분석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게다가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대통령이 2월 초 “코로나가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말한 뒤 신천지발 확산이 시작됐다. 5월 초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방역으로 전환하자마자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했다. 어느덧 ‘정부의 낙관=코로나 확산 예고’로 인식될 정도다.

시행착오 빈도와 부작용만 본다면 코로나 대책보다 더한 게 부동산 대책이다. 정부는 6·17 대책으로 신규 규제지역의 아파트 잔금대출 한도가 줄어 비판이 쇄도하자 종전대로 되돌렸다. 7·10 대책에서 다주택자 취득세를 일괄적으로 8∼12%로 올린다고 했다가 지방 반발로 지방의 2주택 보유자들은 중과 대상에서 제외했다. 임대사업자 제도를 폐지키로 하면서 세제 혜택 축소 논란이 커지자 부라부랴 양도세 중과 부분을 수정했다. 이쯤 되면 정부가 치밀한 연구 끝에 안을 내놓은 것인지, 여론을 살피려 ‘아무 대책 대잔치’를 벌인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낙관론→자화자찬→부작용→희생양 찾기→땜질 처방’은 정부 일처리의 공식처럼 돼버렸다. 여권 인사들이 “곧 부동산 대책의 효과를 국민들이 알 것”이라며 한목소리로 호언장담하는 게 불안한 이유다. 공자는 “사람이 영리해지는 길은 세 가지다. 첫째는 깊이 생각하는 것으로 가장 귀한 것이다. 둘째는 모방하는 것으로 가장 쉬운 일이다. 마지막은 경험으로 가장 혹독한 것이다”라고 했다. 쓴 경험을 몇 차례 겪고도 반면교사로 삼지 못하면 무지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지난달 “여기가 북한이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투기성 다주택자는 때려잡아야 한다”고 했던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은 최근 반성의 말을 남겼다. “갭투자를 하는 분들이 주변의 친구들이고 평범한 사람들인데 지나치게 투기세력, 적이라고 (공격)해버렸던 것 아닌가.” 대표적 ‘친문’ 의원조차도 진영논리에 치우치지 않은 심사숙고한 정책의 필요성을 알게 된 듯하다. 전문가 의견을 경청하고 국민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은 진리다. 하긴 애초 그 정도 상식을 가진 정부라면 이처럼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겠지만.

고세욱 경제부장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