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 확진’ 공포, “눈 먼 자들의 도시, 현실화되는 중”

입력 2020-08-24 00:04
초등학생과 학부모들이 23일 경기도 김포 양도초등학교에 설치된 선별진료소에 들어가고 있다. 이 학교에 다니던 2학년 여학생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학교 측은 이 학생과 접촉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김포=최종학 선임기자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23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에 대해 “누가 감염원이고 누가 피감염자인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현 상황은 ‘눈먼 자들의 도시’에 비유된다”고 했다. 포르투갈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장편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한 도시 주민 대부분이 설명할 수 없는 집단적 실명에 걸리게 되면서 빠른 속도로 붕괴되는 사회의 모습을 묘사했다.

최근 코로나19 재확산 양상은 감염경로가 파악되지 않는 ‘깜깜이 확진’이다. 23일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10일부터 이날까지 최근 2주간 국내에서 발생한 코로나19 확진자 2801명 중 16.2%인 453명의 감염경로를 조사 중인 상태다.

전문가들은 깜깜이 확진 증가는 지역사회 내 전파가 상당 수준 이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최원석 고대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금은 교회, 카페 등 집단감염이 일어난 일부 집단이 확인되긴 하지만, 집단이 너무 다양하고 감염이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어 전파 경로를 추적하는 것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기존의 역학 조사 역량으로 충분히 소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코로나19 감염자 수가 크게 증가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엄중식 가천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깜깜이 확진의 증가는 확진자의 전파 경로가 금방 확인되지 않거나 또는 환자가 너무 많아서 역학조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의미”라며 “환자가 너무 많아지면 진단·추적·격리·치료 등 코로나19 대응 단계 중 진단·치료까지는 가능하지만 추적까지는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깜깜이 확진 확산을 낳은 주요 원인으로는 무증상 감염과 느슨해진 경각심이 손꼽힌다. 김 교수는 “광화문 집회, 파주 스타벅스 등 사례에서 보듯이 발열, 기침 등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확진자가 안심하고 밀폐·밀집된 장소에서 생활하다가 감염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깜깜이 확진’은 역학 추적을 어렵게 만들 뿐 아니라 폭발적인 n차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어 위험하다고 강조한다. 최 교수는 “확진자 1명의 감염 경로를 모른다는 것은 몇 번의 단계를 거쳐 확진자까지 감염이 이뤄졌는지 모르는 것이며 따라서 숨어 있는 환자가 더 있을 수 있다는 의미”라며 “방역 당국에 신고된 환자 1명은 적어도 몇 배 또는 몇십 배의 환자가 더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특정 장소나 집단이 아닌 전방위적인 방역의 일환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격상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엄 교수는 “감염 경로가 파악되지 않는 상황에서 당장 사회적 거리두기를 3단계로 강화하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확인된 확진자를 격리시키는 것만으로 지역사회 내 감염을 막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깜깜이 확진을 최소화하기 위해 서로가 서로에 대해 격리시키는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