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A4 용지 8쪽 분량의 장문의 기사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 수해현장 방문 과정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며 그의 애민정신을 부각하는 데 힘썼다. 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이 임박하면서 집중되고 있는 ‘보여주기식’ 정치 이벤트의 연장선상이라는 평가다.
노동신문은 23일 ‘수재민들은 군당청사에서, 일꾼들은 천막에서’ 제목의 기사에서 김 위원장의 이달 초 황해북도 은파군 수해 현장 시찰 과정을 상세히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자신의 렉서스 SUV 차량(LX570)를 직접 몰고 해당 지역을 찾았다.
이 기사에는 김 위원장이 은파군 당 위원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방문을 약속한 사실부터 주민들 안부를 묻는 모습, 그의 SUV가 논에 빠진 순간까지 구체적으로 담겼다. “길이 험해 갈 수 없다”는 만류에도 김 위원장이 “아무리 길이 험해도 피해 상황을 직접 봐야겠다”며 방문을 강행한 일화도 소개됐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삼중고’(대북제재·코로나19·수해)로 노동당 창건일에 주민들에게 선전할 마땅한 성과가 없자 최근 김 위원장이 보여주기식 행보에 더욱 집중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애민정신을 앞세워 경제난에 따른 주민들의 실망과 분노를 최대한 잠재우려 한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은 자신 명의로 전략물자를 은파군에 나눠주거나 군 당위원회 청사 건물을 수재민들에게 내줄 것을 지시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당초 10월 10일까지 공사를 끝낼 것을 지시한 평양종합병원의 완공이 내년으로 미뤄질 가능성도 높아졌다. 노동신문은 “평양종합병원 건설자들이 자랑찬 노력적 성과를 안고 당 제8차 대회를 맞이하기 위해 연속공격, 계속 혁신해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완공 시점이 노동당 창건일이 아닌 8차 노동당 대회가 열리는 내년 1월로 미뤄졌음을 암시한 것으로 보인다.
대북 소식통은 “노동당 창건일까지 병원은 세울 수 있어도 그 안에 들어갈 의료 장비들을 구하는 것은 대북 제재와 북·중 국경 봉쇄로 어려울 것”이라며 “순천인비료 공장의 경우 완공을 하지 못하고 외벽 페인트칠만 마친 채 서둘러 준공식을 연 것으로 아는데, 평양종합병원도 이럴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국가정보원도 최근 열린 국회 정보위에서 북한이 국경 봉쇄 장기화로 외화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주요 건설 대상을 대폭 축소했다고 보고한 바 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