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 테이블 오른 美·中 갈등… 부담스런 韓 “G2 공영 중요”

입력 2020-08-24 04:06
서훈(왼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지난 22일 부산의 한 호텔에서 회담을 마친 뒤 악수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 실장과 양 정치국원은 이날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한 일정 등을 논의했다. 연합뉴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지난 22일 부산에서 6시간 가까이 회담을 하고 시진핑 국가주석 방한 일정 등 양국 현안을 논의했다. 시 주석의 방한에 대해서는 ‘코로나19 안정’을 전제로 ‘조기 방한’한다는 데 합의했다. ‘연내’ 또는 ‘금년’이라는 명시적 문구는 빠졌다. 코로나19와 미·중 갈등, 미국 대선 등 외교적 변수들을 고려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서 실장과 양 정치국원은 22일 오전 9시30분부터 4시간 동안 회담을 하고, 이어 오후 1시30분부터 1시간50분 동안 오찬 협의를 했다.

서 실장은 회담 후 취재진과 만나 “많은 시간 모든 주제를 놓고 충분히 폭넓게 대화를 나눴다”며 “아주 좋은 대화였다고 본다”고 말했다. 양 정치국원은 “충분하게, 아주 좋게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한국 정부 최대 관심사인 시 주석의 방한 시기는 ‘코로나 안정 이후 조기 성사’로 정리됐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양측은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돼 여건이 갖춰지는 대로 시 주석의 방한을 조기에 성사시키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특히 중국 측은 “한국이 시 주석이 우선적으로 방문할 나라”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조기 방한’은 그동안 양국이 밝혀 온 ‘연내 방한’보다 다소 후퇴한 표현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5월 시 주석은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 당시 “금년 중 방한하는 데 대한 굳은 의지는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서 실장과 양 정치국원 회담에서는 ‘연내’라는 말이 빠졌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2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조기 방한이 연내 추진을 말하는 것이다. 내년으로 미룬다는 것이 아니다”며 “다만 코로나 상황 때문에 변수가 있어서 시기를 못 박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리커창 중국 총리의 방한이 연내에 추진되고 있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연말에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에 따라 리 총리의 방한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시 주석의 방한까지 연내로 확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11월엔 미국 대선도 있다. 미·중 갈등 속 대선이 열리는 상황에서 중국 최고 지도부가 연이어 방한해 한·중이 밀착하는 모양새가 연출되는 것이 한국 정부로서는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 실장과 양 정치국원의 회담에서도 미·중 갈등이 거론됐다. 청와대는 “양 정치국원은 최근 미·중 관계에 대한 현황과 중국 측 입장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 홍콩보안법 등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의 협조를 요청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 정부로서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이에 대해 서 실장은 “미·중 간 공영과 우호 협력 관계가 동북아뿐 아니라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중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중립적·원론적 입장을 견지한 것으로 해석된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