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위기 상황에 돌파구가 여전히 안 보인다. 미·중 갈등이 치킨 게임으로 치달으면서 한국의 외교적 입지는 위협받고 있으며, 북·미 대화는 작년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 동력을 상실했다. 남북 대화 국면을 이용해 첨단 미사일 체제를 구축한 북한은 개성 연락사무소를 폭파하더니 대화에는 관심이 없다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고 있다. 여기에 전 세계적인 코로나19의 만연은 모든 분야에서 각자도생 분위기를 고착시키는 중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시대에 안보 문제는 핵심 중 핵심이다.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고 있지만 국제 해양 전략적 관점에서 삼면이 바다로 사실상 해양 국가인 한국의 안보는 바다에서 결판날 수도 있다. 1982년에 2050년까지 3단계 해군 건설 장기 계획을 수립한 중국은 역내 제해권 확보를 목표로 2040년까지 6개 항모전단을 배치할 계획이다. 공격용 무기를 가질 수 없는 전범국 일본도 헬기 탑재 호위함 4척을 경(輕)항공모함으로 개조하는 항모전단 구축을 적극적으로 실행해 이미 작년에 가가호를 진수시킨 바 있다.
동북아 해양 권력을 둘러싼 치열한 각축이 계속되는 가운데 한국 국방부도 ‘2021∼2025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하면서 경항모 도입 사업을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수차례 좌초됐던 해군의 숙원인 항모 보유 시대가 가시권에 들어온 것이며, 해군 창설 100년이 되는 해의 청사진인 ‘해군비전 2045’의 첫발을 떼게 된 것이다. 해양 권력 각축은 차치하더라도 우리 바다의 삼면에서 주변국의 강력한 해군력이 준동하는 상황에 대응하지 못한다면 상식적으로 볼 때 세계 10위의 경제대국 한국의 위상과는 전혀 맞지 않다.
비록 경항공모함이지만 항모 보유는 효율성과 가성비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항공모함은 전투기를 탑재하고 다니는 ‘공격적인 군사력’이다. 하지만 그 태생적 규모상 적 레이더 탐지에 쉽게 노출되고, 정밀도가 높은 대함미사일과 장거리 전략폭격기의 등장으로 전략·전술적 가치가 떨어져 미래 전쟁에 적합하지 않으며, 동북아 군비경쟁을 가속화해 한국에 불리하다는 논지가 있다. 우리 해군의 항모 전단 운영 능력과 예산을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제 대한민국 안보는 북한과의 대치만을 생각하는 전통적 안보 개념에서 벗어나 중국과 일본의 해군력 증강에 대응하는 국제전략 차원에서 고려돼야 한다. 항공모함 보유는 보유국이라는 ‘존재감’에 그 진가가 있다. 전략적으로는 ‘반접근 지역거부 전략(A2AD)’ 능력을 확보하는 첫 단추이며, 대외적으로 자국 수호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실질적 활용성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항공모함의 전략·전술 가치가 떨어진다는 지적에도 주요 해군 강국들이 여전히 항모를 운용하고, 새로운 항모를 건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과 일본이 왜 그렇게 항모에 사활을 걸고 있으며, 미국의 항모전단에 비해 화력이나 작전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중국이 항모 전력 확대에 부심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군사력은 국제정치에서 자국의 이익 수호를 뒷받침하는 최종 요소다. 한국의 해양 전력 강화는 주변 환경에 대한 최소한의 억지력 확보이며, 필연적인 당위다. 특히 해양 강국에 둘러싸인 한반도 상황에서 해양 군사력 확보는 한국 안보의 절대적 핵심 요소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은 진짜 전쟁준비보다는 강력한 억지력으로 평화를 유지하자는 말이기도 하다. 여러 우려가 있지만 항모전단의 존재는 영토 수호 의지와 억지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단은 국제전략 차원에서 ‘해양 강국’의 출발에 힘을 모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국제지역연구센터장)